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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도시의 밤은 휘황찬란하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나무를 칭칭 감은 전구들, 아파트 옥상 경관 조명등까지. 문득 지금 우리가 쓰는 전기가 얼마나 먼 '여행' 끝에 서울에 도착하는지 궁금해졌다. 울진핵발전소에서 만들어져 신태백-신가평 765kV송전탑을 타고, 백두대간을 넘어온 것일까? 아니면 충남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시작해 신안성 765kV송전탑을 타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서울에 입성한 것일까?
수도권은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38%를 소비한다. 하지만 대형발전소가 수도권, 특히 서울에 자리잡는 법은 거의 없다. 핵발전소는 울진·고리·월성·영광에, 화력발전소는 서산·태안·당진에 집중해 있다. 수도권에서 전기를 흥청망청 쓰는 동안, 누군가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송전탑 근처에 살면서 전기 생산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고 있다.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정부는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22년까지 원전 12기를 더 짓는다고 발표했다. 핵발전소 같은 대형발전소를 중심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송전탑의 크기도 커진다. 전기수송을 위한 '고속도로'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밀양시민들은 바로 이 '765kV송전탑'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신고리원전 1, 2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초고압송전탑을 세우는데, 69기의 철탑이 밀양을 관통한다.
주민들은 초고압송전선이 유발할지도 모르는 암발생률 증가 같은 건강피해를 가장 두려워한다. 또 수십 개의 철탑과 거미줄 같은 송전선로가 들어서면 밀양의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고, 땅값도 떨어뜨린다고 걱정한다. 심지어 경기도 용인시 일대를 지나가는 송전탑은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정 옆에 들어선다.

한전은 밀양에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총신대에는 사전공지도 없이 공사를 시작했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 만든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한전은 송전탑 건설에 있어 인허가 특혜를 받고, 지식경제부의 허가만 얻으면 개인 토지도 강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매서운 겨울날 밀양시민 1500여명이 버스를 타고 상경해 한전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날 언론에는 한전이 산림청과 '친환경송전탑 건설 협약식'을 맺었다는 내용만 보도됐다. 밀양시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도권 시민들도 언론도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지역이 겪는 고통에 무심한 것이다.
핵발전소와 같은 대형발전소 중심의 전력공급체계는 수도권 주민들의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고, 지역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 2020년 전력생산에서 원자력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이런 정책의 장기적인 피해는 국민 모두의 몫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전력수급체계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야 한다. 철저한 전력 수요관리를 중심으로 에너지계획을 수립하면서, 국책사업을 명목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전원개발촉진법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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