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자연스럽게 지난 일 년 동안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게 된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성취와 좌절, 희망과 절망… 더하고 빼어 보면 가까스로 ‘제로’이거나 어쩔 수 없는 ‘마이너스’이기 십상이다. 오직 흔들림 없는 ‘플러스’ 항목은 맛도 없이 꾸역꾸역 먹는 나이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허겁지겁 모임 자리를 만들어 적자의 슬픔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끌벅적 확인코자 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찰과상같이 쓰라린 쓸쓸함은 현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1616년 생모인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하는 일에 명황제가 고명을 내린 것을 축하하며 실시한 증광시에서, 마흔두 살의 광해군은 사뭇 엉뚱한 책문(策問)을 내린다.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프랑스 대학입학시험 바칼로레아의 철학 문제가 “우리는 욕망을 해방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가?”라는 사실에 충격과 동시에 열패감을 느꼈던 일이 새삼스럽다. 정치, 사회, 역사, 예술, 철학…. 어느 분야라도 어울러 꿰뚫는 이 정도의 문제라면 ‘정답이 존재하는 질문만 한다’는 아시아적 교육의 특징이 굳이 ‘전통’은 아니었다는 증거로 삼을 만하다.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책시의 문제는 삶 그 자체에 대해 묻고 있다. 정답이 없는 삶의 문제에 최선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너른 날개를 한껏 펼치고 날아오르는 하늘은 더하고 빼는 셈속이 부질없는 공활한 삶이다. 이 뜬금없이 아름다운 시험에서 을과로 급제한 이명한은 삶을 이토록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은 것이다. 세월은 네 마리 말이 끌 듯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또한 인생은 구렁텅이에 빠진 뱀과 같고, 백년 세월도 한순간에 훌쩍 지나간다. 그러나 사람이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세월이 사람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이렇게 답안지를 척척 채워나간 이명한은 광해군보다 스무 살이 어린 스물두 살의 새파란 청춘이었다. 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삶의 원숙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음을 증명하듯, 이명한의 붓은 새뜻하고도 웅숭깊게 삶의 비밀을 묘파한다.


새해를 맞아 희망과 기대로 부풀어 오른다, 는 말은 차마 쓰지 못하겠다. 그건 어찌 되었거나 묵은 해가 알뜰한 흑자였던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일 테다. 개인적인 삶의 적자야 여차저차 숙명론까지 끌어들여 위로한다 하더라도, 진구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 괴로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의 환란은 언어의 당의정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말을 부리고 말에 의지해 사는 작가에게 말의 혼란은 어떤 결락과 내핍보다 혹독하다. 정의를 말하려니 정의가 없다. 자유를 말하려니 자유가 없다. 행복을 말하려니 행복이 없다. 사랑을 말하려니 사랑이 없다. 이 총체적인 난국에 즈음하여 어디에 마음을 기대고 몸을 붙여 살아내야 하는가? 다시 사백 년 전의 옛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그조차 당시 체제의 요구에 부응한 누군가가 원하는 ‘정답’에 불과할지 모르나, 나름의 모범답안에 귀를 기울여 본다.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을 이기는 방안으로 애늙은이 이명한이 내놓은 대책은 이러하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나에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죽을 때가 되어서도 남들에게 칭송 받을 일을 하지 못함을 성인은 싫어했다. 살아서는 볼 만한 것이 없고 죽어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면, 초목이 시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무지한 후진을 가르쳐 인도하고, 터득한 학문을 힘써 실천하며, 등불을 밝혀 밤늦도록 꼿꼿이 앉아,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를 일평생하자. 그렇게 하면 깊이 사색하고 반복해서 학습하게 되어, 장차 늙는 것도 모른 채 때가 되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니, 마음에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집권기의 한가운데서 쇠락의 애수를 묻던 광해군은 그로부터 일곱 해 뒤 폭군의 낙인이 찍힌 채 강화도로 유배된다. 이명한은 인조반정 후 승승장구하여 대제학과 이조판서에 이른다. 역사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의 운명을 갈라놓았지만, 지금 그들은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을 통해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변치 않는 시간 앞의 질문뿐이다.


완도 금당도의 그믐달이 뜬 아름다운 밤 풍경.(출처 :경향DB)


다분히 도학군자의 이상을 제시한 사백 년 전 이명한의 모범답안을 2013년의 끄트러기를 붙잡은 내 마음대로 고쳐 써 읽어본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삶에 치열하기를, 당장의 영광보다는 시간에 새겨질 명예를 기억하기를,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도로써의 공부를 중단하지 않기를, 아무러한 치욕이라도 견뎌내어 이 비열한 시절을 끝끝내 증언하기를… 스러져가는 지난날을 보내고 어김없이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는 적자 인생의 동반자들과 함께 간절히 바라본다.


김별아 | 소설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