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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은화(銀花)로 뒤덮이고 며칠 지나 경북 안동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도산면 토계리 퇴계 종택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이육사 문학관에서 열린 낭독회에 초대받은 터였다. 문학관은 큰길에서도 한참을 골짜기로 파고들어 벽처나 다름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외진 곳까지 누가 시와 소설 낭독을 들으러 찾아와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행사가 열리는 강당이 꽉 차 있었다. 문학관이 주최하고 지역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벌이는 ‘이육사문학축전’이 10년째 거듭되다 보니 그만큼 ‘열성 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겨울 추운 밤의 마을방에 마을꾼들과 모여 앉은 듯, 마음이 낙낙해졌다.

함께 초대되어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안동까지 가는 길에 시인 손택수가 물었다.

“누이는 한국시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뭐요?”

그러더니 망설이는 나를 앞질러 제 대답부터 냉큼 내놓는다.

“나는 한국 시사 백년에 최고의 시구는 육사의 그것이라 생각해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 바람 8%, 나비 2.55%, 먼지 1%/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달 2%’에 자기 시의 저작권이 있다는 손택수의 말마따나, 시적 은유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사물들을 잇는 일이다. 그러니 ‘강철’과 ‘무지개’를 과감하게 이어낸 이육사의 ‘절정’을 시대의 절창으로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강철과 무지개라… 버스 차창 밖에서 휙휙 쌩쌩 지나는 겨울 풍광을 배경으로 하여 그 이미지들을 곱씹어본다. 굳세고도 아련하고, 차갑고도 뜨겁다.

작가들은 애초에 백석이 읊었듯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구에서 하나, ‘높고’라는 구절은 가끔 시대의 요철을 만나 덜그럭거린다. 근대문학 연구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친일 작품을 쓰지 않은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적극적으로 친일하던 최남선을 꾸짖은 것으로 알려진 정인보와 한용운을 비롯해 김영랑, 변영로, 오상순, 홍사용, 염상섭 등이 끝까지 매문(賣文)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회유와 협박을 받을 계제가 아니었던 청록파를 포함한 신진들을 제외하면 지조를 지킨 작가는 그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높기는커녕 낮고 너절하고 졸렬하게 시절에 굴복한 것이다.

 

일제시대 민족저항시인 이육사 (경향DB)

하지만 식민지시대의 문학사를 ‘굴종의 역사’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은 그 미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저항의 깃발을 곧추세웠던 날선 붓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표적인 항일문인으로 윤동주와 이육사를 떠올린다. 그런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와, 무장투쟁단체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한 이육사는 삶의 궤적이 다분히 상이하다. 윤동주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오로지 시인일 뿐이었다면(본질적으로는 이야말로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육사는 온몸으로 시를 쓴 행동주의자였다. 어쨌든 끝내 높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시는 공통적으로 강철처럼 단단하고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강철로 된 무지개인 양 시리도록 맑다.

기실 작가들은 약한 존재다. 오로지 몰라서 덧씌운 판타지나 그럴듯하지 실생활에서는 도무지 궁상스럽고 쩨쩨하기 한량없다. 하지만 슬픔의 벗이 되기에는 그만한 조건이 다시없다. 슬픔은 작가의 눈을 적셔 세상을 촉촉하게 바라보도록 하고, 때로 그 슬픔은 메마른 세상을 적실 유일한 힘이 된다. 슬픔에 기대는 대신 권력에 기대어 보려, 달팽이나 지렁이처럼 순정하게 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알아서 부역의 진창을 기는 자들이 다시 문학을 능멸한다. 저희 입맛에 맞지 않는 작품을 내치며 작가들의 내밀한 슬픔마저 쥐락펴락하려 한다. 화가 나기에 앞서 우습다. 우습기보다는 차라리 슬프다. 그래서 훼절의 시대와 끝끝내 야합할 수 없었던 동주의 시는, 육사의 시는 그리도 간절히 슬픈가.

‘그리고 새벽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여지세’

이육사의 시 ‘파초’가 낭송되는 행사장에는 세 살 때 아버지와 영영 헤어진 이육사 시인의 외동딸인 이옥비 여사가 자리를 함께했다. 육사가 직접 지었다는 옥비라는 이름은 기름질 옥(沃)에 아닐 비(非)자를 쓴다고 한다. 기름지지 말라고, 부유하지 말라고, 가난함을 기꺼워하며 담박하게 살아가라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시인의 강강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다가, 이내 숙연해진다.

시인의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몸서리쳐지는 우리의 겨울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의 그것이 강철로 된 무지개였다면, 우리도 굳세고 영롱해지지 못할 바 없다. 물방울처럼 맥없이 스러질 수 없는, 달면 더욱 뜨거워지고 치면 더욱 단단해지는 강철의 무지개.

김별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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