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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인가, 중국 출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중국은 왜 그렇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민감하냐고. 그때도 한반도 사드 배치가 이슈였다.
그의 답은 이랬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는 것은 미국으로선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그때 핵전쟁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또 물었다. 좀 레이더로 들여다보면 어떠냐고.
“만약 중국이 미국 본토를 레이더로 감시한다고 해봐라. 미국이 어떻게 하겠나. 미국은 중국 서쪽에 인접한 국가들을 포섭해 미사일기지를 많이 세웠다.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면 베이징이 감시권에 들어간다. 용납할 수 있겠나?”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제서야 ‘아차’ 했다. 강대국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중국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든 북한 장사정포가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고, 미·중·일의 레이더와 인공위성이 24시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와는 안보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도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한국 관광 금지가 전면 확대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평소와 달리 무척 한산하다. 연합뉴스
중국의 사드 경고는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다. 7년 전인 2010년 문정인 교수가 집필한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보자. 주펑 베이징대 국제전략센터 부주임은 “만약 한국이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가입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이므로 중국은 분명히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라며 “MD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도 많은 공을 들였다. 2015년 전승절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격적으로 대접했다. ‘망루외교’는 사드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랬던 만큼 지난해 7월 사드 한반도 배치 발표 이후 보인 중국의 격한 반응은 이해할 만했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준 호의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의 비난과 분노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중국은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수입을 막았고 이어 단체관광객 방한을 금지했다. 심지어 중국에서 열린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를 TV 화면에서 멀리 잡기도 했다. 그의 모자에 박힌 ‘롯데’ 로고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베이징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 상영을 피했다. 한마디로 쪼잔하다. 마음이 상한 덩치 큰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아이를 꼬집으며 복수하는 모양새다.
정작 사드 배치를 주도한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못한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다른 것은 여기에 있다. 1962년 쿠바사태 당시 미국은 소련을 막아섰다. 배를 돌리지 않으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소련에 눈웃음을 보내며 쿠바를 때리는 꼼수는 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중국에 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중국에 대한 호감은 주변국 어느 나라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국은 결코 한국을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결코 미국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중국을 무시하는 근거로 중국의 보편성 부족을 든다. 중국은 결코 정의롭고, 너그럽고, 자유롭고, 믿을 만한 존재라는 신뢰를 주변국들에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을 중국으로 만든다는 중화(中華)는 두려움 그 자체다.
‘천하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得天下 在得民心)’고 했다. 중국이 미국을 넘는 꿈을 갖고 있다면 주변국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한국마저 등을 돌리면 이제 중국은 동아시아 어디서 민심을 잡을 수 있을까. 중국이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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