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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안검사와 점심을 먹었다. 이틀 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화두에 올랐다. 검사는 억울해했다. 유우성씨가 간첩인 것은 분명한데 증거에 발목이 잡혀서 놓치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몇 달간 간첩조작사건을 취재하면서 꽤 괜찮은 검사라 믿었던 이들에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검찰이 유씨가 간첩이라며 재판부에 낸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증거는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건넨 것이었다. ‘검찰은 국정원에 속았고 국정원은 정보원에 속았다.’ 한마디로 검찰은 간첩사건을 조작할 악의가 없었으며 단지 멍청하고 부주의했다는 것이 수사결과의 내용이었다.

검사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법원이 서류만 보고 간첩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요지였다. 직접 수사를 하지도 않은 당신은 어떻게 유씨가 간첩이라 확신하는지 물었다. 그가 밝은 얼굴로 답했다. “아휴, 우리야 딱 보면 알지요.” 거침없이 다음 말이 이어졌다. “판관 포청천 아시죠.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검찰이 수사도 하고 재판도 하고 집행도 하고…. 포청천이 작두를 대령하라~ 하잖아요. 껄껄껄.” 젊은 날 사법시험을 보는 데 지능을 다 써버린 것일까.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왜 오늘 처음 보는 법조 출입기자에게 하는지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전원 구조 속보는 오보인 것 같네요.” 옆에서 돌 씹는 표정을 하고 있던 타사 기자가 오보를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불쾌한 그와의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2014년 4월16일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점심과 비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됐다.

세월호가 모듈 트랜스포터를 이용한 육상거치를 위해 5일 오후 목포 신항만에서 방향을 바꿔 재접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씨 무리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대검찰청을 출입한 나는 대통령과 검찰과 법원이 3박자로 칼춤을 추는 것을 지켜봤다. 사고 다음날부터 검찰은 총괄수사대책본부를 구성해 세월호 참사 규명을 책임졌다. 대형 사건·사고의 원인 규명에 검찰이 나선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진실규명의 총대를 정부가 아닌 검찰이 멘 결과는 참담했다. 검찰은 죄인찾기에 주력했고, 검찰식 죄인찾기는 ‘사법처리’를 염두에 둔다. 잘못과 책임이 있어도 형법상 기소할 만큼의 형사적 증거가 부족하면 검찰의 죄인 명단에선 빠진다.

대통령은 참사 닷새 만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면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원한 것은 형사적·민사적 잘잘못 이전에 ‘진실’ 그 자체였으나, 결과는 대통령의 바람대로 누가 욕먹을 것인지 줄세워 발표한 ‘수사결과’뿐이었다. 검찰이 이미 사망한 유병언씨 행적찾기에 골몰하는 동안 세월호는 진실과 함께 더 깊은 바다로 침몰했다.

대법원도 빠지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1심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대법원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안전사고와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법관이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고려할 사항을 논의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사실상 최고 형량을 선고하라는 지시로 읽히는 발표였다. 각 재판부의 독립권을 주장하며 문제 있는 판결에 공개적 비판을 해도 징계를 내리는 대법원마저 칼춤에 동참했다.

박근혜씨는 구속됐고 세월호는 3년 만에 겨우 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아직도 왜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는 4월16일은 부활절이다. 지난 3년 동안 세월호를 생각하며 들었던 노래를 아이들에게 바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중에서)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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