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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운석이 충돌하는 듯한 엄청난 뉴스 속에서도,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산천초목이 다 바뀌어도 책상 앞에 앉아 마감을 지키느라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글로 세상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서생들. 글쓰기 자체가 직업인 사람도 있고 글의 맨 뒤 괄호 속에 적혀 있는 대로 본업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을 ‘톰’이라고 합시다.

요즘 톰들이 쓰는 기명칼럼은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죠. 단군 이래 직업, 나이, 성별, 가치관이 다른 필자들이 사전합의 없이 이토록 일사불란하게 어슷비슷한 글을 쓴 적은 없을 거예요. 참 톰에게는 먹고살기 힘든 세월이죠. 쥐 한 마리를 잡으려면 옛날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투입해서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하거든요.

‘더러운 폭탄(Dirty bomb)’이 100만개쯤 터진 것 같은 세상이지만 지금 한창 잘나가는 사람들도 있죠. 말 잘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공중파보다는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시사평론가로 불리는 전문직도 있지만 본업이 따로 있는 분들이 많죠. 변호사가 많고 교수, 언론인 등등이 대부분이죠. 워낙 입담 좋고 논리 전개가 뛰어나며 상황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하는 게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제리’ 같죠.

말과 글은 같은 언어(言語)를 자원으로 하고 있지만 성질이 아주 다른 물질입니다. 끓는 물과 얼음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물과 불의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요. 그렇죠, 톰과 제리처럼 대비가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직접 대면한 사람 중에 말 잘하고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는 게 서로 다르다는 것의 방증이 될 것 같네요.

말은 순간적이라 할 정도로 산출과정이 짧고 천부적 재능과 재치, 순발력의 산물이죠. 그 말에 대한 다중의 반응도 즉각적입니다. 결정적으로 말이란 휘발성이 강해 잘 날아가 버리고 결국 기억에 잘 남지 않으니까 책임 소재의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롭죠.

반면에 글은 단 한 줄을 쓰려고 해도 그냥 나오는 법이 없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단어 선택, 어법, 스타일, 길이, 비유, 수사법, 전후의 호응, 주제와의 연관성 등등을 다 따져야 하고 그러고도 그 글을 쓰는 사람이 아는 한 이전에는 없던 글이어야 하니까), 따라서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 노동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또 글은 독자의 반응이 느리거나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죠. 제리를 좋아하는 어린이는 많아도 톰의 팬은 별로 없는 것처럼요.

광속의 정보소통 시대에 맞지 않게 글이라는 건 지루해서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뭐라도 잘못 쓰면 두고두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이제까지 힘들게 쌓아올린 알량한 명예마저 위협받을 수도 있죠. 말과 달리 글은 바위 속의 화석처럼 오래도록 남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 같은 건 원래부터 없는 것 같습니다.

제리는 여기저기 방송 프로그램 같은 곳에 불려 다니느라 운전기사와 비서를 고용(해야)하는 판인데 톰은 어렵사리 원고를 쓰고 나서는 술집으로 달려가 나오지도 않은 원고료를 미리 마셔버리는 게 버릇이죠. 제리는 판관, 해설자, 좋은 자리 잡고 강 건너 불구경에 불난 데 부채질하는 사람 역할을 골고루 맡아가며 더 세게 자극적으로 할수록 잘한다고 칭찬받고 톰이 상상도 못할 출연료를 챙겨가죠. 자신의 개인적인 주장을 강변하고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면서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맘껏 소리 지르고 욕하는, 지극히 유아적이고 편파적인 제리도 있는데 그런 언행조차 시간이 지난 뒤 웬만하면 다 잊혀지고 용서를 받지요. 쉽사리 다시 등판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톰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일은 대체로 부정적인 사건, 필화나 명예훼손에 연루되어서이고 한 번 그렇게 ‘찍히면’ 영원한 낙인이 되기 십상입니다. 만회할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들죠. 낙인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옛적의 형벌에 묵형(墨刑), 경형(墨+京刑)이라는 게 있어 얼굴에 글자를 새겨넣어서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한 적이 있었지요? 소설 <주홍글씨>의 주인공도 글자를 가슴팍에 달고 있었고요. 말이라는 건 지나고 나면 배 떠난 자리처럼 흔적도 남지 않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있어도 글로 무슨 빚을 갚는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글로 갚을 수 있는 빚이라 해봐야 글빚?

영화에서 비슷한 비중의 역할을 하면서도 톰이 제리에 비해 개런티가 현저하게 적다면 이상하겠지만 현실에서 글을 쓰는 톰의 수입은 말 잘하는 제리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원고료가 수십년 동안 별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회 대부분의 분야에서 정년에 가까워질수록 업무에 대한 대가를 많이 받는 게 당연시되지만 글쓰기 분야에서만은 정년은 아예 없고 청탁이 끊기면 고용보험도 없이 일은 끝나며 젊으나 늙으나 원고료와 인세가 평등합니다. 힘들게 쓰든 쉽게 쓰든 상관없죠. 결과물로 평가될 뿐이니까요.

늙으나 젊으나 언론 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은 지식인, 지성인으로 간주되므로 상식과 공정함, 균형감각을 갖추고 겸손하게 때로 엄정하게 처신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리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질 것을 요구받는 거죠.

마감을 코앞에 놓고 톰은 고뇌에 빠지지요. 뭘 쓴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자극적인 뉴스, 제리들의 화려한 말재간을 당할 수 없고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입수할 가능성도 별로 없지요. 현실과 조금 떨어져서 우화적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자니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거나 아예 외면받기 십상이고요. 그렇다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물에 물 탄 듯 알맹이 없는 수사로 때우자니 문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마감은 다가오고 담당자의 독촉은 심해집니다.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과 사고, 허위와 포장 뒤에 숨은 진실을 대못처럼 단단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이런저런 인간사와 삶의 세부를 압축한 역사를 미래에, 후세에 일용할 양식으로 저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부신 변설과 언사는 불꽃놀이의 폭죽처럼 빛나다 곧 스러져 버리지만 글이라는 등대불은 길 잃은 배의 앞길을 비추는 법. 얼어붙은 달그림자, 한겨울 거센 파도에 등대지기를 생각하듯 저들을 기억해 주시기를.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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