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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엄마의 커튼콜

opinionX 2017. 1. 11. 10:47

5일 밤 9시30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향. 방금 연극 공연을 마친 일곱 명의 중년여성 배우들이 객석에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 앞에 둘러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8반 안주현 엄마입니다.” “6반 이영만 엄마입니다.” “4반 김동혁 엄마입니다.” “저는 생존학생 2학년 1반 장애진 엄마입니다.” “7반 정동수 엄마입니다.” “3반 정예진 엄마입니다.” “7반 곽수인 엄마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아이들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밝힌 이들은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단원인 세월호 엄마들. 손에는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일곱 글자 팻말을 나누어 들고 있었다.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은 자신들이 출연하는 창작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1월 들어 벌써 세 번 무대에 올렸다. 4일과 5일 ‘성미산 동네 연극축제’ 개막작으로 공연을 마친 뒤 7일에는 부산 일터소극장에서 공연했다. 23, 24일에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맞서 문화예술인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운 블랙텐트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연극 작품 속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을 통해 심리치료를 한다는 것이 연극을 시작한 목표였지만, 세월호 엄마들은 “나를 치유하는 것보다는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고 공연 이유를 밝혔다. “ ‘세월호는 빨갱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데 노래나 연극 같은 문화적인 접근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동혁 엄마)이었다.

5일 전남 진도군 팽목 진도항. 세월호 1000일의 흔적. 이준헌 기자 ifwedont@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것, 세월호 유가족이 되는 일”을 당하고 난 뒤, 엄마들은 내 인생에 있으리라고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쉼 없이 겪어왔다. 연극에 나선 엄마들은 스스로 그런 변화를 더 나서서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 10년 만에 얻은 아들 뒷바라지한다고 집에서 살림만 하던” 수줍음 많은 수인이 엄마는 극 중에서 300일 넘게 파업을 벌이는 억척스러운 비정규직 엄마 순심이 노릇을 익살스럽게 해 낸다. 극 중 새내기 노동자인 아들 수일 역을 맡은 동수 엄마는 “연극을 하면서도 한참 동안이나 내가 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이제 없을 날들,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을 배웅하는 그런 날들을 그는 아들로서 연기하고 있다. 1인6역을 하는 예진이 엄마는 뮤지컬 배우가 되려 했던 딸 예진이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10월 첫 공연 전 예진 엄마는 딸이 잠들어있는 추모공원으로 달려가 울고 웃으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일 먼저 보여줬다.

코믹 연기로 객석의 웃음을 이끌어내지만, 세월호 엄마들의 가슴속은 웃지 못한다. 진상이 규명되어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한, 희망이나 소망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호가 1000일째가 되었다는 것은 “4월16일을 1000번째 사는 것”(주현 엄마)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멈춰 서 있을 수가 없다. “ ‘엄마 아빠가 이만큼 하고 왔다’고, 이 다음에 아이들 만났을 때 할 말이 있게끔, 다 쏟아 넣어야 하기”(동혁 엄마)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간절한 마음은 이웃과 세상에 가 닿았다. 4·16가족협의회와 엄마의 이야기공방은 2015년과 2016년 연속해서 ‘엄마랑 함께하장’이라는 바자회를 세 차례 열어 수익금을 지역아동센터 난방비 등으로 후원했다. 2016년의 마지막 밤에는 서울 통인동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4160그릇의 카레덮밥을 나누기도 했다. “내 새끼 잃은 것에 대한 억울함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부모님들의 생각이 승화한 것 같다. 그건 그냥 알아진 것 같다.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를 알지 못했고, 그걸 볼 눈이나, 들을 귀도 없었는데, 아이들을 위한 싸움을 하면서, 나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싸움,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변화해왔다.”(영만 엄마)

아직은 무대가 어색한 세월호의 엄마들. 공연을 마치고 객석의 박수갈채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것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구나’라는 아이들에 대한 떳떳함이다. 세월호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공연은 계속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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