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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운전하여 출퇴근하는 때입니다.”


“아침식사를 여유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 30분 일찍 일어나서 줄넘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가 나만의 시간일까요?”


복잡하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혀 있는 현대인들은 때때로 자기만의 시간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자녀양육과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여성은 이 ‘혼자만의 시간’도 출퇴근하는 이동시간에 의미가 덧씌워진 것이다. 새벽에 줄넘기라는 운동을 하는 시간은 액면 그대로의 여가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그 의미를 캐보면 아침식사 준비라는 가사·돌봄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확보된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자기만의 시간’을 둘러싼 내용과 의미는 다르게 부여되고 있다. 여가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의 성별은 남성 66.5%, 여성 33.5%로 나타나고 있다. 연령별로는 40대 32.7%, 30대 26.5%, 50대 25.1%, 20대 10.3%, 60대 5.4%를 기록하고 있다. 


골프를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가사·돌봄 노동으로부터 면제돼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주말에 골프클럽에 가서 소위 ‘필드’에서 사람들과 운동을 한다는 것은 주말에 가족 안에서 밥하는 노동과 노약자들을 보살피는 노동 의무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골프라는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정 안에서의 노동(가사나 돌봄)을 그 누군가가 감당해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일·가정 양립’ 혹은 ‘일·생활 양립’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쨌거나 ‘일’은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이다. 근대산업사회의 노동중심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성평등과 관련한 지표도 노동시간의 남녀 비교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서 여가생활의 시기와 시간, 양, 내용, 여가생활의 확보 배경, 여가생활의 다른 행위와의 중복 여부, 의미 부여의 내용 등은 변화하고 있는 사회생활상과 남녀관계를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여가생활은 계층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기도 하지만 가족 내 계층을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가져다준 계기가 생겨났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쌓여 있는 일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할 때 얼마나 발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던가. 어느 정치인의 저서명이 되어 유명해진 ‘저녁이 있는 삶’이 나에게는 밥을 해야 하는 노동 때문에 한동안 갈등적이었다. 저녁에 일주일에 3일만 와서 아이들에게 밥만 해주는 분을 잠시 고용하기도 하고, 내가 퇴근 후 서둘러 집에 가서 해주기도 하며, 가끔은 모른 척 “어떻게 굶기야 하겠어” 하면서 방관자적 자세가 되기도 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내게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둘째가 석식을 신청하고 밤 11시까지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면서 나의 삶의 질이 바뀌어가고 있다. 저녁시간을 가족에 대한 의무감 없이 보낼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있어서 ‘저녁이 있는 삶’은 학교급식(석식)이 선물해주었고, 주말이 있는 삶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뺀 가족구성원의 외출(?)이 가져다주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이것이 인간관계와 가족생활의 철학이 돼야 하고, 그래야 여가생활의 불평등도 사라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정책적 대안도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 마을공동체, 학교사회와 국가도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의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앗아갈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허걱. ‘공포의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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