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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몇 개의 강렬한 기억들이 저장돼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육아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도 더 지난 듯하다. 남편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해 오전 9시경에 잠들었고, 나는 남편의 숙면을 돕기 위해 15개월 차이의 연년생인 두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둘째를 포대기에 업었고, 돌을 갓 지난 큰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루종일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자연의 시간에 노동시간의 리듬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해가 뜨면 노동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해가 뜨면 퇴근하고 해가 지면 잠에서 깨어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 중 15.2%가 교대제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제조업은 43.7%의 기업이 교대제를 활용하고 있다. 즉 자동차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1주일은 낮에 일하고, 그 다음주는 밤에 일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도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교대제 근무자는 대형 병원의 간호사, 아파트 경비원과 택시기사들이다. 이들도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일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족구성원 중에서 교대제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족생활은 다른 가족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자칫 생활소음이 있을 수 있는 낮 시간에 잠을 청해야 하는 교대제 근무자를 배려해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생활해야만 한다. 낮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바깥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 소리도 거슬리고, 평상시에는 반가웠을 “세탁~, 세탁~”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신경 쓰인다. 


어린 아이라도 있는 집은 여차하면 엄마는 아이를 들쳐 안고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만약 교대제 근로를 하는 남성들의 급여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여성들이 전업주부로 있으면, 가족생활은 생체리듬을 파괴한다고 여겨지는 교대제 근무를 하는 남성들의 노동주기와 밥시간에 맞춰서 여성들의 생활반경이 만들어지기 쉽다.


최근 교대제가 시행되는 사업장에서는 교대제 근로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하면서 야간근로를 없애는 방향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가령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는 지난 3월14일부터 밤샘근무가 폐지됐다. ‘주간연속 2교대제’가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서 노동자들이 3시40분쯤 일제히 출근하고 있다. (경향DB)


가족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고, 특히 여성들의 생활리듬이 깨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 주간 조에서는 남편들이 빨라야 8시가 넘어야 퇴근을 했다. 이제 오전근무 조에는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줘야 하고, 오후 3시30분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간식을 챙겨줘야 한다. 오후근무 조에는 오후 3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남편을 위해 출근 전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오전 1시30분까지 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남편은 새벽 2시가 돼서 귀가하고 있다. 여성들이 낮 시간에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고 밤에는 잠을 설치기 쉽다. 남성들의 갑작스러운 근로조건 변화가 부인에게는 평온한 일상을 깨는 것일 수 있다.


“순덕아, 잘 지내나?” 오랜만에 울산의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야, 내는 이제 일을 하니까 애기아빠가 밤에 일 안하니까 참 좋다. 3시30분에 마치면 운동하고 저녁에 집에 오고. 또 오후근무일 때도 운동하고 자기가 알아서 밥 먹고 출근한다 아이가. 우리는 각자 알아서 잘 산다.” 


일상의 변화에 건강하게 잘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는 친구와 전화를 끊고는 마음 한 쪽이 든든하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의 교대제 가족. 내 친구처럼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가족도 많다. 교대제 근무를 하는 당사자가 가장 힘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가는 가족구성원의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여, 그(녀)들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도록 다양한 육아와 문화·여가생활 지원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밥은 당사자가 해결할 수 있는 가족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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