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 과정에서 북한이 취한 일련의 계획적인 행동이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북한은 11월에 미국의 한반도 안보관련 전문가 세 팀을 북한에 초청하여 영변 핵단지 내 경수로 건설현장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북한은 마지막 미국팀이 돌아가자마자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연평도를 포격함으로써 한반도에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미국과 전 세계에 주지시켰다. 그런 후 바로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와 CNN 앵커를 북한에 초청하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력적 조치에 일정 부분 동의함으로써 회담 재개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한편,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자 국제사회에서는 한반도의 긴장해소와 전쟁방지가 최우선적 과제로 떠올랐다. 동시에 6.25전쟁이 아직도 종식되지 않고 남북·북미간의 대결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현 정전체제의 문제점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또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관건이라는 인식이 무력충돌의 경험을 통해 널리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이제 새해를 맞아 ‘포연의 2010에서 상생의 2011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의 의의는 무엇이며, 북한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팀들과 리처드슨 주지사를 초청하여 새로운 핵시설들을 공개하고 북핵문제 해결책을 논의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 ‘분쟁의 2010년을 넘어, 평화의 위기를 넘어’ 평화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데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며, 상생의 2011년을 이룩해 내기 위해서는 우리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위협한 가운데 긴장감이 흐르는 연평도의 모습< AP >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의 의의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무엇보다도 미중 간의 거대한 ‘힘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발생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탈냉전의 과도기를 끝내고 미중 간에 대결적 구도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가속화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 동안 미국은 ‘군사’와 ‘경제’ 양 분야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리더십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8년 미국경제의 붕괴는 미국으로 하여금 경제카드를 통한 자신의 힘의 투사를 불가능하게 하였고, 미국에게 남은 카드는 현실적으로 군사안보 카드뿐이었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군사안보 카드를 사용하였다. 미국은 한국정부와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북한을 처벌하면서 급속도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일종의 ‘예방전쟁’적 성격을 가진 ‘예방적 힘의 투사’를 하였으며, 중국은 이를 자신의 안보이익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던 거대한 ‘힘의 전환’과 그에 따른 신질서 형성의 맥락 속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치가 급속히 ‘미국-한국 vs. 중국-북한’의 대결작 구도로 구조화되었다.
한편, 2010년 11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은 북한이 남한의 영토에 대해 직접적으로 저지른 무력도발이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한반도를 준전시 상태에 빠뜨렸다. 상황이 전쟁 위기로 치닫자,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는, 천안함 사건 때와는 달리, 이 지역의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한반도에서의 긴장해소와 전쟁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10일에는 워싱턴에서 미중 고위급 정기 군사회담이 열려 한반도 위기를 논의했고, 15일에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장관이 한반도정책 관련 팀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하여 한반도 위기 상황과 역내 안보 문제, 북핵문제 등을 협의했다. 남한정부의 연평도 근해에서의 포격 훈련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하는 가운데, 19일에는 러시아의 요청으로 유엔안보리가 소집되어 한반도 긴장해소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미국은 이명박정부와 동맹협력을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남한정부의 ‘전쟁 불사’의 태도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북한의 새로운 핵시설 공개의 이유
북한은 지난 11월과 12월에 미국의 한반도 및 북핵 전문가 세 팀―잭 프리처드(Jack Pritchard)팀, 시그프리드 헤커(Siegfried Hecker)팀, 그리고 모튼 아브라모위츠(Morton Abramowitz)팀―과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미 뉴멕시코 주지사를 초청하여 새로운 핵관련 시설들을 공개하고 북핵문제 해결책을 논의했다.
특히 스탠포드대 핵과학자 헤커박사팀에게는 영변 핵단지 내에서 2012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는 25-30 메가와트 경수로 외에 그것의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건설했다고 하는 최신식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주었다.
그러면, 북한이 이처럼 미국인사들을 초청하여 새로 건설한 핵시설들을 공개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력조치들에 일정 부분 동의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미국과 대화하고 협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주고받기를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 조야도 그렇게 해석했다.
북한은 미 방북팀들과의 대화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한 기본적인 준거의 틀로서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의 의의를 강조했으며, IAEA 사찰팀의 수용, 사용후 연료봉의 대외 반출, 미사용 연료봉의 대남 매각, 남북 간 핫라인 개설 등에 대해 동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북한의 일련의 제스처는 기본적으로 북한은 핵시설 추가공개와 연평도 포격사건을 통해 미국에게 한반도가 아직도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정전상태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 해결방법으로서 조속히 6.25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 맺고 관계정상화를 이룩해야만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알린 것이다.
그 메시지는 만일 미국이 협상을 거절하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군사적 충돌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고, 북핵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경고를 또한 담고 있었다.
북한이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협력안보센터 소장에게 원심분리기 모델로 밝혔다는 네덜란드 알메로(Almelo).
#2011년 한반도 평화를 결정짓는 요인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분쟁의 2010년을 넘어, 평화의 위기를 넘어’ 내년에는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는 데에는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의 노력, 남북한의 상호 관계개선의 노력, 미중양국 간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력 강화이다.
첫째, 북한이 올해부터 이미 자신들이 짓고 있는 새 핵시설을 미국인사들을 초청하여 공개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력적 조치에 일정 부분 동의하는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였지만, 이러한 대미협상과 대미개선 노력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소련붕괴 이후 대미관계와 대남관계의 개선을 자신의 ‘21세기 생존과 발전’의 축으로 삼는 삼았던 지난 20년간의 ‘남방정책’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폐기하고, 이제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꾀하는 ‘북방정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행동은 북한이 여전히 북미관계 개선을 북중관계 강화와 함께 향후 생존과 발전의 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올 9월 김정은의 후계자 선출, 2012년 강성대국 개막 등을 앞두고 있는 북한은 비록 이명박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지만, 명분과 기회가 주어지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정부도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과 임기 말년의 레임덕 현상이 겹치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출구하여 내년에는 대북협력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북한은 남한과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21세기 생존과 발전의 전략’의 수립과 이행이 불가능하며, 마찬가지로 남한도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확보할 수 없고 향후 나라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제대로 기약하기 어렵다. 이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통해 이명박정부는 우리가 한반도 전쟁위기에 발목을 잡히면 결코 ‘글로벌 코리아’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내년에는 미중양국 간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협조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양국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미국-남한 vs. 중국-북한’의 대결구도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자신들의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양국 간에 비록 겉으로 보이는 행동에는 차이는 있지만, 긴장해소와 전쟁방지를 위해서는 협력하였다.
중국의 경우,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남한과 북한을 방문하여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회의의 개최를 제안했으며, 김정일위원장으로부터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참석할 경우 6자 수석대표 긴급 회동 제안에 응할 수 있다’, ‘IAEA의 핵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고, 김정일위원장은 다이빙궈에게 북미대화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국도 스타인버그 국무부장관 일행을 12월 중순에 베이징에 보내 중국과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했으며, 내년 1월에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미중양국 군사관계, 한반도 긴장해소, 북핵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미중정상회담을 준비한다. 무엇보다도 내년 1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이뤄지는 미중정상회담은 한반도 위기해소,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6자회담의 재개 문제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다.
내년에 위의 세 가지 요소의 작동 방향을 종합해 보면, 지금 같아서는 다행히도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정착, 북핵문제 해결에 나름대로 진전이 있게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인다. 위기 뒤에 평화가 온다고 할까.
한반도의 긴장완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우리정부의 주인의식 회복과 평화지향적인 노력 필요
그런데 위의 모든 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정부가 한반도문제에 대한 주인의식과 주도권을 회복해야 하며,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갖고 그 방향으로 적극적이고 일관되게 노력해야만 한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 문제는 결코 미국이나 중국, 혹은 북미양국 간에 맡겨놓을 성격이 아니다. 정치라는 것이 내치에서의 정답은 ‘분열’이 아닌 ‘통합’이며, 외치에서의 정답은 ‘전쟁’이 아닌 ‘평화’가 아니던가.
현재 한반도는 한반도에서 긴장해소와 평화정착, 북핵문제 해결 등을 위해 중국, 러시아가 적극 나서고, 북한과 미국도 나름대로 자기 식대로 나서고 있는데, 이명박정부는 ‘전쟁 불사’의 자세로 북한과 ‘기 싸움’을 지속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논의와 진전을 오히려 어렵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명박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민족의 화해협력·평화번영 이니시어티브에 기반하여 키워왔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과 그 주도권으로 확보했던 공간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은 우리에게 ‘민족’(남북관계)은 사라지고 ‘외세’(국제정치)만 남아 이 양자 간의 균형이 사라짐으로써 우리는 전략적 불구자의 처지로 추락해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중관계의 악화와 한미동맹의 과도한 군사동맹화, 강성화(强性化)는 향후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벌써부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2011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
결론적으로, 내년 2011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오는 1월 워싱턴 미중정상회담 결과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이 북핵문제에서 어느 정도로 높은 수준의 진전을 이룩해 낼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한반도 긴장해소의 틀’을 마련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내년은 최소한 올해와 같은 포연의 해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국제체제에서의 ‘힘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양국의 대결이 기본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남북 최고지도자들 간의 불신이 여전하기 때문에,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일 내년 1월 워싱턴 중미정상회담이 만족스런 성과를 내지 못해 결국 북미대화와 6자회담이 재개되지 않는 경우에는,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별로 높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이 한반도에서의 무력도발,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제3차 핵실험 등을 통해 또 다시 미국과 남한을 압박하고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내년 1월 워싱턴 중미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한다.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밑 릴레이 기고]③물은 밑에서부터 차오른다 (2) | 2010.12.31 |
---|---|
[세밑 릴레이 기고]②한국 민주주의의 ‘장두노미’ (2) | 2010.12.31 |
[이사람] “개인의 삶도 위기관리 필요하다” (2) | 2010.12.24 |
[시론]‘국가위기관리실’ 운용을 위한 다섯가지 고언 (0) | 2010.12.24 |
유튜브와 정치의 만남 (0) | 2010.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