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해구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매년 연말에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해왔던 교수신문은 2010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장두노미’(藏頭露尾)로 결정했다. 쫒기던 타조가 급한 나머지 덤불 속에 머리만 숨긴 채 꼬리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이 말은, 이미 그 실상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진실을 감추려 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올해의 세태를 꼬집고 있는 이 말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한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현저히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공정사회’를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공정사회’ 강변

이와 관련하여 2010년의 한 해가 저물고 있는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현실에 직면해 있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국가 차원으로, 국가의 공권력이 정상적으로 행사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정치사회 차원으로, 정당과 국회의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는 시민사회 차원으로,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그것은 민주주의의 지체 또는 후퇴를 의미한다.

우선 국가 차원에서 이명박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어떻게 행사되고 있나? 이에 대해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주목할 것은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계기로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영포게이트’ 사건이다. 그것은 이 사건이 대통령과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영포회’(영일·포항 공직자 모임) 관련 인사들이 정부 내에 또 하나의 권력층을 이루어 자신들의 사적 이해를 위해 국가의 공권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했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청와대의 비호 아래 ‘영포회’ 관련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국무총리실의 공직윤리관실은 민간인 불법 사찰을 비롯하여 정부와 사회 곳곳에 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 같은 사실은 이명박정부 하에서 권력 실세의 불법적인 영향력 행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김종익씨가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러나 이명박정부 하에서 공권력 행사의 난맥상은 여기에서 그치고 않는다. 공권력 행사의 핵심 기구인 검찰조차 ‘영포게이트’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사건 은폐를 위한 공직윤리관실 관련자들의 대포폰 사용 문제를 간과했는데, 이는 검찰이 이 사건의 은폐를 방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야기시키고 있다.

사실 그 동안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검찰 수사의 편파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투신 사망에까지 이르렀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 논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보복수사 논란, 그리고 청목회 로비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 타당성 논란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국가 차원에서 공권력 행사가 이상과 같은 문제점들을 보여주었다면, 정치사회 차원의 국회와 정당 활동의 문제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지난 8일 국회에서 발생한 내년도 예산안 날치기 통과는 정치사회 차원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 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미처 계수 조정도 마치지 못한 내년도 예산을 날치기로 강행 통과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통해 아랍에미레이트 파병안, 친수구역특별법, 서울대법인화법 등 다수 쟁점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이루어졌던 그 과정에서 국회 본회의장이 폭력이 난무하는 난투장이 되고, 그 결과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은 물론이다.

국회의 행정부 견제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회가 갖는 주요 권능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회의 권능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국회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집권여당에 의한 예산안의 날치기 통과는 국회 스스로가 자신의 이 같은 권능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국회가 스스로 자신의 권능을 부정하는 이 같은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국회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대통령에 종속되어 있는 한나라당에 있다. 즉,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심의 중인 예산안을 갑작스럽게 강행 통과시키는 집권여당의 이 같은 행동은, 과거 독재정부 시기의 여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스스로를 대통령의 들러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안보 내세워 권위주의 통치 강화 우려

한편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은 상당히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사회 차원에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자유를 제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특히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이명박정부의 시도는 올해에 들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낙하산 인사를 통해 그리고 종편과 보도 채널 배분문제를 통해 언론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시켰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의 형성과 유포를 제어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이명박정부의 이 같은 시도가 시민사회 차원에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했음은 물론이다.


                             전국언론노조와 MBC 조합원들이 2008년 7월 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정치검찰 규탄대회를 열고 
                                                        ‘PD수첩’ 표적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아마도 이명박정부는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민주주의의 과잉’으로 이해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이런 이해로 인해 이명박정부는 법의 준수를 강요하는 법치주의를 주장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원래적 의미, 즉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권력의 행사가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에 비추어 볼 때, 법의 준수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명박정부의 이 같은 법치주의는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저항을 봉쇄하고 그들로 하여금 권력에 순치시키는 거꾸로 된 법치주의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 차원에서 민주주의 후퇴는 시민들에 대한 인권 보호의 약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그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낙하산 인사를 통해 그 운영을 좌지우지함으로써 현재 야기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파행 사태는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공권력 행사 차원에서, 정치사회의 정당과 국회의 활동 차원에서, 그리고 시민사회의 표현 및 언론의 자유와 인권 보호의 차원에서 야기되고 있는 이 같은 사태들은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가 급속히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후퇴의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이에 대한 진지한 인식과 사려 깊은 이해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국정의 주요 목표로서 ‘공정사회’의 실현을 내거는 등, 현실과 동 떨어진 구호를 내세움으로써 현실을 호도하고자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현재 ‘장두노미’의 현실, 즉 민주주의가 급속히 후퇴하고 있고 세상이 이를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이를 애써 감추고자 하는 그러한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6·2지방선거 결과가 보여주고 있듯, 시민들은 급속히 후퇴하고 있는 우리 민주주의의 이 같은 현실에 반발하여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껏 이 같은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야기된 남북관계의 악화는 그 악화의 분위기를 이용한 이명박정부의 ‘안보정치’의 가능성, 즉 안보를 내세워 그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할 가능성조차 시사하고 있다.

점차 임기말에 다가감에 따라 현실적으로 이명박정부가 그러한 유혹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렇다면 내년에 들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최대 과제는 이명박정부의 이 같은 시도를 적극 제어하고 저지하는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