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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하다.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다. 문 대통령 없이도 언론보도의 주인공으로 제법 등장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그렇다. 야당이 문 대통령의 국민 대면접촉을 ‘쑈통’이라고 비판하자 유탄을 맞을까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청와대 관저로 이사하기 전,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라면이라도 드시고 가라’며 민원인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장면. 충북청주 수해현장에 장화와 고무장갑, 밀짚모자를 쓰고 엉덩이엔 작업용 방석을 붙이고 봉사하던 모습. 독일 베를린에 안치된 고 윤이상 작가의 묘소에 그의 고향 통영의 동백나무를 식수하고 참배한 일. 국민 관심 속 일화가 모두 작년 일이다. 최근엔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아동복지시설에서 요리봉사에 나섰지만, 이 마저도 요리봉사를 함께 했던 셰프의 SNS를 통해 근황을 알게 된 정도다. 짐작컨대, 사회활동여성에 대해 남아 있는 전통적 인식과 영부인의 봉사활동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세간의 시선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들도 당대 여성관과 정치상황에 자유롭지 않았다. 물론 독립적인 존재로 활동을 한 분들도 있다. 육영수 여사(박정희 대통령)는 육영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했다.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는 최초로 해외단독순방을 정례화 했다. 김윤옥 여사(이명박 대통령)는 한식 세계화에 관심을 가졌고, 해외언론에 녹색성장관련 기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이 제도적으로 정비되거나, 활동정형이 사회적으로 안착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영부인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거나 공식적으로 임명된 직위가 아니다. 우리와 같이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은 대통령 배우자의 지원에 관하여 미연방법전에 명시하고 있다. 법에 근거하여, 영부인 비서실이 설치되고 영부인 활동이 연방정부의 재정으로 운용된다. 미국 대통령 영부인 비서실은 평균 16~25명의 인력이 활동한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에디스 여사는 사회봉사 활동을 돕는 사회활동비서관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인 엘리너 여사는 사회개혁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행정비서관을 두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키 여사는 독자적인 언론담당비서관을 두었고, 지미 카터 대통령 부인 로잘린 여사는 4개의 부서를 두고, 프로젝트와 언론관리 및 연구 활동을 직접 하기도 했다.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는 백악관 의료보험개혁팀을 이끌었고, 클린턴 대통령재직 기간 상원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경호 및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영부인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직원 수도 5~6명 정도로 적은 편이다.

대한민국은 조선 왕조국가 이후 일본제국주의와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적 민주국가로 탄생한지 불과 100년이 지났다. 비가 많이 와 홍수가 나거나, 비가 적게 와 가뭄이 들어도 왕의 탓인 시대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해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이유는 대략 5가지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부인 활동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법률과 제도가 만들어지면, 비선권력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통로를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 둘째 영부인은 대통령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모든 활동을 공식문서로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 셋째 예산지원의 법적근거를 마련하여 활동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다. 넷째 시민사회와 정부기관은 물론 기업과도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사회적 의제들을 정책으로 다룰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미래에 희망을 주는 시대의 여성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간의 활동으로 미루어 보아, 김정숙 여사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이며 쾌활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다. 고집도 엿보인다. 좋은 기회다. 늦기 전에 영부인의 위상과 역할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유쾌한 정숙씨’를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싶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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