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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언급했다. 26년 전 남북이 공동으로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기본입장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작년 4월에 우리가 주도하여 핵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대통령 취임 후 7월에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 5개년 계획’에도 비핵화 관련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제재와 대화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2020년까지 완전한 핵폐기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속사정을 북한이 모를 리가 없다.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회의(1·9)에서 북측 대표는 “남측 언론에서 지금 북남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측이) 상호존중과 이해의 정신에서 잘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비껴갔다. 비핵화는 핵이라는 김정은 정권의 악성 종양을 제거하려는 고난도 작업이지 정권 자체를 없애는 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핵을 그냥 둘 리가 만무하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끝나자마자 백악관은 “(남북 회담) 다음 단계로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최우선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도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20개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동결 대 동결’ 방식에는 반대임을 분명히 했다. 틸러슨과 함께 참석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과의 전쟁 계획도 있다고 했다. 비핵화를 목표로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비핵화를 두고 처리해야 할 문제들의 선후, 경중, 완급을 정하는 데 한·미 양국은 여전히 화음을 조율 중이다.

사실 북한 비핵화를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달성하느냐는 ‘비핵화 알고리즘’을 짜기란 쉽지 않다. 먼저, 비핵화 회담 주체와 관련하여 북한은 ‘남한은 빠져 있어라’라는 입장이다. 비핵화와 연계되는 북·미 간 평화협정과 수교 문제 등에서 남한이 무슨 결정권이 있느냐는 태도다. 북은 핵무기를 가진 미국과 직접 담판을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한국이 주도권을 쥐되 미·중·일·러가 모두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한국이 운전대를 제대로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엎어진 냄비처럼 놓여있는 북·미대화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함에도 ‘화염과 분노’의 트럼프는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견지하고 있다. 평창 이후가 우려되는 이유다.

둘째, 비핵화 시점이다. 한국과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 시간표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완전한 북핵 폐기를 목표로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등 여건 조성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반면에 트럼프는 북핵이 실질적으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제거를 지체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따라서 트럼프와 문 대통령이 서로 비핵화 시계를 맞추는 것이 급선무이다.

마지막으로, 비핵화 방식이다. 한·미 모두 현재까지는 외교적 해법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교적 셈법이 다르다. 어떠한 이유로도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과는 달리 외교적 방법이 무위로 끝날 경우 군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계산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핵 위협이 결국은 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평창 ‘겨울잔치’는 끝나게 되어있다. 봄에는 미뤄졌던 한·미 군사훈련도 재개될 것이다. 남은 숙제는 오랜 시간 주머니 속에 있던 영수증처럼 구겨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어떻게 펴느냐이다. 때론 후퇴와 우회(迂廻)가 필요하겠지만 최종 목표는 핵이 없는 한반도 만들기다. 쉽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한·미 양국이 평창 너머의 시간과 공간을 읽는 비핵화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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