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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는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토론회를 시작하자마자 국민의례를 약식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보수 측 참가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문제를 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개정안에 반대하는 참가자들에게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교육을 위한다는 말로 가장 반교육적인 말과 행동을 주저없이 저지른 것이다.

내가 ‘교육’을 공부하면서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면, 한국에서 가장 속지 말아야 하는 말이 바로 ‘교육’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교육이라는 말은 가장 반교육적으로 사용된다. 교육을 운운하는 사람들의 교육적 무능함을 가리거나 반교육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사용되는 말이 ‘교육’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보기에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나이 듦’에 대한 ‘생각 없음’에 그 원인이 있는 듯하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나이가 들수록 당연히 겁을 먹고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이 많을 테니 그만큼 인생에 대해 후대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대가 필히 자신들이 부딪치며 경험으로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것은 자연이나 외부의 위협을 슬기롭게 이기는 지혜일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어떤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조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나아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에게는 다른 압력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을 ‘꼬시는’ 지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젊은이는 늙은이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다 잔소리꾼이라고 여기고 자기들의 삶을 구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젊은이를 구슬려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 의견서(출처 :경향DB)

 

지혜로운 자란 이처럼 자신의 경험을 남이 들을 수 있는 때를 봐가며 포착하고 기회가 닿았을 때 살살 잘 구슬릴 수 있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내 말을 들어라’는 명령이 아니라 듣고 싶게 하는 기술, 즉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한다. 때를 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해도 되는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후대가 솔깃해서 들을 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들어!’라고 명령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른에게!”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회인 것만 같다. 오죽했으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채현국 선생님이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겠는가?

나는 이런 사회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정말 겁난다. 늙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대로’ 늙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소리를 꽥! 지르는 어른들은 많아도 나이 드는 법을 제대로 보여주는, 따라하고 싶은 어르신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채현국 선생님은 “잘 봐두고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 봐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50대를 넘어서고 있는 386들도, 40대 중반이 되고 있는 나도 ‘저 모양’으로 늙어가고 있지 않는가?

폭력을 질서라 생각하며, 폭력을 ‘인륜’이라 생각하며, 폭력을 교육이라 생각하면서.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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