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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보자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 노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노동할 때가 아니라 ‘노동을 중단했을 때’ 드러나게 된다. 한때 ‘직장맘’을 대표했던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그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임금은 얼마나 받는지,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은, 전국의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모조리 일손을 놓을 때에야 비로소 사회 전체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 제33조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조직해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단결권·단체교섭권과 함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른바 ‘노동3권’이라 불리는 이 권리들은, 어느 하나만 제한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불가분의 것이다. 하물며 노동자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핵심적인 권리인 파업권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주 일부 언론에 노사정위원회가 만든 ‘비정형 근로자 보호방안 정책보고서’가 소개됐다. 한국노총에도 버림받은 노사정위가 작년 12월 만든 보고서, 이게 왜 이제야 언론 보도로 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 보고서는 화물트럭·덤프·레미콘·퀵서비스·대리운전·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간병인, 보험설계사 등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육아휴직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제안을 담고 있다.



(경향DB)



그러나 노사정위 보고서는 유독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만은 보장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보고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 일부가 노조법상 근로자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전제한 것”이라는 한마디 외에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헌법에 명백히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가 이거란 말인가. 그럼 ‘그 일부’ 때문에 나머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헌법상 권리가 몽땅 제한되는 것은 정당한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존재는 전혀 ‘특수’하지 않다. 정부와 자본은 이들이 ‘노동자’와 ‘자영인’의 경계선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수많은 업종에서 특수고용 형태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도록 자본이 요구하기 때문에, 그 규모는 현재 200만명에 육박하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 다수도 특수고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퀵서비스와 택배기사들을 보자. 이들은 물건을 배달하고 일정한 수수료를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이들을 사용하는 업체들은 어떠한가.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전화기를 설치해 배달 주문을 받아, 대기 중인 기사들에게 ‘오더’만 내리면 된다. 배달 요금 전체를 업체가 챙긴 후, 거기에 붙는 몇%의 수수료만 떼어주면 된다.


배달 주문량만 일정 수준 이상이면, 업체 입장에선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다. 업체 홍보나 주문량 따오기조차 기사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도록 해서 떠넘긴다. 온갖 재주는 기사들이 부리는데, 돈은 모조리 업체가 챙겨간다. 주문량이 떨어져 업체 문을 닫더라도 최소한 손해는 안 본다. 경영자들이 져야 할 책임이나 부담을 모조리 기사들이 대신 지기 때문이다. 주문량이 감소하면 업체가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들의 배달 건수가 떨어져 자동으로 임금이 삭감된다. 자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쉬운 장사인가!


이처럼 자본가들이 져야 할 경영 위험이나 책임을 모조리 노동자에게 전가시킨 것이 ‘특수고용’이란 고용형태다. 그런데 정부는 10년 넘게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요구해온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노사정위는 파업권은 도저히 못 주겠으니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으로 만족하란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그토록 무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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