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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민들에게 투하된 세금 폭탄의 발신지가 전 정권의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비로 인한 세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택시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통 범칙금 부과가 예전 같지 않다고 호소한다. 무인 카메라 대신 경찰이 사진을 찍고 있다. 회사 택시의 경우 사납금 15만원에 신호 위반 7만원 벌금을 내는 날이면 하루 종일 일하고 22만원을 내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지인들은 “정부가 자동차로 돈을 걷는 것 같다. 서(署)별 할당이 있는지 경찰도 악착같다”고 한다. 담뱃값 인상 이유가 “국민 건강 걱정”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조세 불복종이 폭주, 세무사 세무실은 북적댄다.

무슨 동학혁명 시대도 아니고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절로 떠오른다. 마침내 점입가경,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싱글세를 도입하겠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농담”이라고 수습했다. 이에 ‘농담세’를 신설하자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정부가 나랏일을 그르치는 것도 어느 정도 급수와 종류가 있다. 벌이는 시원찮은데 세금이 많으면 ‘학정(虐政)’이 피부에 와 닿는다. 전시 군 작전권 연기 소식을 듣고 군사주권 문제 이전에, 세금 걱정부터 든다. 정권이 교체되든 안되든 이 문제로 인한 비용을 다음 정권에서는 무슨 명목으로 메울까.

미국은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전시작전권을 “가져가라”고 종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자국 의회에서 국방 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군수산업 불황으로 골치 아프던 차에 마지못한 척 계속 맡아주겠다고 한다. 물론 전제는 미국산 무기 도입이다. “점령군이다, 보호자다” 식의 반미-사대주의 논란을 떠나, 한·미동맹이 유례없는 고비용 아웃소싱, 미국의 ‘관리 국방’ 체제라는 사실은 국제정치학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돈 대는 사람이 ‘을’인 이상한 아웃소싱이다.

대통령에게 왜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보다 비용부터 따지는 게 낫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 사업이다. 김종대 ‘디펜스 21플러스’ 편집장은 향후 30년간 운용 비용은 제외하고 도입 비용만 13조7000억원에 실제 사업 진행 과정에서 대략 20조원까지 증액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무기 구매는 국회에서도 사업 변경이 쉽지 않은 사안이다. 서민들에게 10조원, 20조원은 감이 없는 숫자다.

게다가 국방 문제는 굉장히 전문 분야처럼 ‘여겨져서’ 부패와 불합리가 극에 달해도 국민적 저항이 어렵다.

첨단 무기는 특수한 상품이다. 천문학적 비용은 차치하고 철저히 맞춤형으로 주문 구입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단어 ‘스펙(specification)’이 그것이다. 스펙은 원래 군사 업무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무기류를 구매할 때 구매자가 원하는 기계류의 치수, 무게 등의 성능과 특성을 나타내는 수적(數的) 지표를 말한다.

스펙, 즉 제작 제원(諸元)이 좋다는 말은 사람이나 상품이나 조건이 좋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 완성품은 아니다.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므로 구매국 주변의 시기별 정세 변화에 따라 유동적이고 복잡한 업무다.

‘스펙(specify)’은 구체, 자세, 명확, 특유, 독특 등 개별성을 강조하는 용어다. 무기 구매를 하려면 사는 쪽의 자기 파악이 가장 중요한 사안임을 말해주는 단어다.

국가의 주요 위협 세력이 누구인지, 상대방의 무기 수준, 상호 지형 지물, 국제 정세 변화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와 판단이 필요하다. 스펙은 그 나라만의 특수성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간단한 예로,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사막에서 쓰는 아파치 헬기가 필요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11월 4일 (출처 : 경향DB)


그런데 우리는 스펙을 요구할 스펙이 없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주식을 살 줄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60년 넘게 남의 나라에 국방을 맡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정을 모른다. 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기술 이전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튼튼한 안보 태세’에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무기를 주문할 능력이 있는가다. 작전권 환수는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전 정권이 국토를 망가뜨리고 쓴 돈이 국가 발전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면, 지금 정권이 작전권을 포기하고 쓰려는 돈은 자기 ‘인식을 포기’한 행위다. 정부는 미국 군수업체에 우리 스펙을 대신 써 달라고 부탁하는 데 성공했다. 그 비용은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뒤집고 뒤집어서 충당할 것이다. 최고 통치자가 최고 세리(稅吏)가 된 예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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