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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 우울과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데 이견이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우울과 폭력은 겉보기엔 상반되지만 원인은 비슷하다. 분노가 자신을 향할 때 우울이 되고 타인에게 전가되면 폭력으로 나타난다. 상황마다 다르긴 하겠으나 분노의 시작은 억울함. 옳고 그름을 둘러싼 정의의 문제다. 억울함은 진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패배’한 사람의 심정이다. 그러니 인생에서 억울함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곳곳에서 누가 잘못했나를 놓고 원인, 책임 소재, 사과의 진정성을 다툰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해당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역사가 있어서 서로 “내가 너를 아는데 말야!”라며 사건과 무관한 상대방의 과거 잘못과 약점을 들추고 싸움은 확대된다.

하지만 지진이나 홍수, 쓰나미 같은 재난이나 느닷없는 국가폭력은 당사자 간에 시비가 드물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다. 피해 원인이 자연재해든 대응을 잘못한 당국이든 가해자는 명백하지만 피해자는 가만히 있다가 당한 것이므로 서로 모르는 사이다.

세월호가 ‘정상적인 사고’였다면? 애초에 기본적인 대응과 조사,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잊을 수 없는 초대형 참사였을지언정 지금쯤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른다. 재해의 책임자와 피해 집단은 위로를 전할 일 외엔 만날 일이 없다. 영화에서처럼 쿨하게 “제 변호사에게 연락하세요”라고 명함을 건네고 보험 회사와 변호사가 대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세월호는 정국(政局)이 되었다. 책임 세력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유가족을 모욕하고 피해자와 그들을 비웃는 세력이 같이 거리에 나와 있다. 단식하는 사람 앞에서 폭식을 하겠다는 발상과 ‘투쟁’이 가능한 사례가 다른 사회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당국과 ‘네티즌 수사대’가 피해자 뒷조사를 하고 유가족의 과거를 신문에 보도한다. 순수한 유가족과 불순한 유가족, 권위적인 유가족과 겸손한 유가족으로 나눈다. 소위 진보 언론의 역할은 그런 소문을 해명해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유가족의 문제나 사생활은 사실이든 아니든 사건과는 무관하다. 그날 세월호에 탔다면 누구나 당했을 사고를 두고 피해자의 개인사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세상 모든 가족이 화목하지 않듯이 유가족도 그러하다. 당신이나 내가 순수한 인간이 아니듯 그들도 그렇다. 성숙한 인격으로 뭉친 사랑의 가족은 드물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사고를 당해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15일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66일째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장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은 인간의 오랜 정치적 행동이다. 피해자 비난의 핵심은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이 가장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경우인데, 이는 불평등한 성(性)인식이 원인이기 때문에 힘겹지만 어느 정도 예상과 대응이 가능하다.

세월호는 피해 학생을 비롯해 일반 사망자, 유족의 과실이 없다. 사고 발생 당시 대부분 집이나 직장에 있었을 유가족에게 무슨 책임이 있는가. 자식을 빨리 꺼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 것? 적당히 슬퍼하지 않고 지나치게 슬퍼한 것? 당국에 항의한 것? 기사 폭행 같은 잘못이 있다 해도 사건 발생과 무관한, 사고 이후의 일이다. 진상규명이 미뤄질수록 이런 일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 일부가 좋아하는 말이 또 있다. 배후. 피해자는 순수한데 그들 뒤에 불순한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과 배후는 다른 집단이고, 유가족은 배후의 조종을 받는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서 괴뢰(傀儡)의 어감은 극히 좋지 않지만 원래 뜻은 그렇지 않다. 꼭두각시 놀이, 인형극을 말한다. 영어 표현(puppet)은 귀엽기까지 하다. 유가족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배후가 있는 순수하지 않은 유가족.” 이 언설의 목적은 분명하다. ‘불순한 가족’이라는 발상은, 사고 원인과 원인을 제공한 진짜 배후를 잘 아는 이들의 생각일 수밖에 없다. 객관적 피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불순한 이들이 사소한 피해를 크게 만들고 있다는 선전을 위해서다.

정부·여당이 원하는 바람직한 상황은 ‘조용한 가족’일 것이다. 나를 비롯, 온 국민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유가족이 슬픔에만 집중하기를 바란다. 나라가 알아서 제대로 처리하면 유가족이 거리에 나올 일이 없다. 세월호는 물론 ‘불순한 유가족’이야말로 당국의 책임이다. 정부가 유가족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역사에 ‘세월호 정권’으로 기록되고 싶지 않다면 정부가 앞장서서 ‘불순한 유가족’ 언설을 차단해야 한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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