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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이 같거나 같은 품이 든다면 이왕이면 더 나은 것을 고르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입니다. 여기서 다홍치마는 그 치마를 입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미혼 여성은 다홍치마에 노래 ‘개나리 처녀’처럼 노랑저고리를, 신부와 새색시는 다홍치마에 녹의홍상(綠衣紅裳) 연두저고리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다홍치마 속담을 풀어보면 ‘이왕이면 어린 여자’라는 뜻이 됩니다. 게다가 과부와 기생은 청색 치마를 입었으니 ‘이왕이면 순진하고 어린 여자’에 가깝겠지요. 이걸 대놓고 표현한 속담이 ‘같은 값이면 처녀’입니다. 부인과 사별했거나 늦장가 가는 남자가 (돈 주고) 신붓감 데려오며 보인 모습들에서 이런 속담이 만들어졌으리라 충분히 짐작 가고도 남습니다.

나아가, 어린 여자가 어림없으면 ‘같은 과부면 젊은 과부 얻는다’ ‘같은 과부면 애 없는 과부 고른다’며 어떻게든 더 젊은 여자를 찾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쩜 그리 한결같은지, 자기 나이나 처지는 생각 않고 어린 여자만 찾는 비양심 심보가 이 속담들로 꼬집힙니다.

요즘 ‘영포티(Young forty)’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습니다. 백세인생 고령화 사회에서 나이에 비해 가치관이나 감각, 취향, 소비 트렌드 등이 상대적으로 젊은 중년층을 이르는 말이 영포티인데, 기성세대의 관성을 거부하고 형식과 허울보다는 자유분방함과 실속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에 편승해, 생각과 감각은 고루한 채 허울 좋게 말만 가져다 쓰는 ‘나이든 오빠’들도 보입니다. 그들이 영포티를 쓰는 것은 어쩌면 연애가 목적이고, 연애의 목표 또한 ‘다홍치마’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양심이 있다면, 여자들의 ‘돈 많고 명 짧은 남자’ 선택권도 인정해야겠지요. 그래야 진정 동가홍상(同價紅裳)에 비길 공평한 동가(同價) 아니겠습니까?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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