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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본인 유학생이 한국인 선배에게 “선배는 개새끼 닮았어요”라고 해서 주변 분위기가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강아지’의 일본어 ‘고+이누(새끼+개)’를 그대로 개+새끼라고 해서지요. ‘새끼개’라고 했으면 좀 나았을지 모릅니다.   

또 술 취한 후배가 “선배는 무지개 같아요”라고 해서 고백받은 줄 알고 좋아했더니 사실은 ‘무지∨개’라고 했는데 혀가 꼬부라졌던 거라든가. 이처럼 순서나 간격을 달리해 생긴 오해는 풀기만 하면 되지만 억양은 다릅니다.

어쩌다 타인의 통화를 가만 들어보면 ‘알았어’ ‘듣고 있어’의 뜻으로 하는 ‘어’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전화기 너머 사람을 볼 순 없지만, 아마도 ‘어’라고 답하는 어조만큼 건조한 표정이거나, ‘또 어구나’ 하는 짜증스러운 표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속담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입니다. 이 ‘아’ ‘어’는 대화 속 문장부호와 함께여야 제대로 들립니다. ‘아!’ ‘어.’ 이렇게요. 고작 근소하게 오므린 입술 차이만으로 이렇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아니라 누르고 올리는 억양(抑揚) 때문에, 그리고 감정 섞인 음성의 진동이라서 같은 말이라도 기분 다르게 울립니다.

가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사실 말다툼의 원인은 그 사소한 일보다 한참 전의 더 사소한 대화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기 불편할 때 상대가 말을 겁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지만 그때의 기분이 음성에 은연중 섞입니다. 상대가 그 진동차를 못 느낄 리 없습니다. 뭔가 불편한 음색에 살짝 비위가 상하고 대화할수록 진폭이 커지다 아주 사소한 촉매로 욱하고 터집니다. 이렇듯 대화는 내용보다 서로의 감정 반응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심란한 마음부터 가다듬거나, 이왕 뱉은 말이라면 지금 기분을 양해 구해야 나중 목소리가 더 커지지 않겠지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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