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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慣性)’.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을 때 처음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새로운 충격 없이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관성적인 관계는 참 무섭다. 힘든 일만 고백하게 되던 친구는 내게 지쳐 떠나버렸고, 실없는 이야기만 나누게 되던 친구와는 관계에 진전이 없어 영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 한때는 관성적인 관계가 주는 안정감이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그러나 곧 타성에 젖게 되어 이도저도 아닌 사이가 되고 말았다. 이런 경험을 수십 명과 겪었을까,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냈다는 후회로 이젠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을 때 관성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더 나은 관계를 향해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충격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여기, 지금도 관성에 빠져 지난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선거철이면 갈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청년과 정치다. 갈등의 핵에는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청년, 그리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정치 간의 ‘오해’가 있었다.

청년이라고 언제나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받고만 싶고, 정치라고 이런 청년을 미워하고만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관계를 깨지 못하고 유지하도록 하는 두 가지 법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먼저, 공직선거법의 연령 제한이다. 한국에서는 만 19세부터 선거권을, 만 25세부터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 만 19세 이상의 청년은 투표권 행사를 통해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 25세 미만의 청년은 ‘나이’와 ‘경험의 부족’이라는 비합리적 판단으로 정치에서 배제되고 만다.

그다음으로는 정치자금법이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은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 정치 신인이거나 정당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선거 비용은 오롯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선거에는 사무장과 회계책임자 인건비부터 시작해 선거사무소의 임차료, 선거 공보물과 현수막 인쇄비, 유세 차량 구입비, 그리고 여론조사 비용 등 4500만~1억원 정도가 든다. 15%의 득표율을 얻을 수 있다면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인적·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청년들에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선거 비용에 투자한다는 것이 도박이자 높은 장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뿐인가. 얼마 전 서울시의회에서는 승자독식구조를 강화하는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을 환대해야 할 의회에서 배제의 정치에 앞장선 모습을 보았다. 이러고도 청년이 정치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무관심과 혐오 때문이라 탓할 수 있을까. 청년이 나서서 정치를 하는 것은 필사적으로 가로막으면서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욕설을 던지는 모순적 태도는 ‘청년을 위한 정치’라는 구호가 위선이라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인구 중 35.8%인 청년을 대표할 청년 정치인이 1%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 청년은 더 이상 선거용지에 도장만 찍는 기계가 될 순 없다.

오늘도 1%조차 안 되는 승률로 선거에 도전하는 청년 후보들이 있다. 이들이 가져올 변화에 더 이상 빚지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함께 선거법부터 개혁해 기성 정당을 발판으로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만이 누려올 수 있었던 관성의 정치를 바꾸자. 청년 후보들이 가져올 새로운 충격을 기분 좋게 맞이하자.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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