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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한 손님이 와서 며칠 묵었다 돌아가려니 마침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바깥양반이 운치 있게 그럽니다. “더 있으시라고 이슬비가 내리는군요.” 그러자 안주인이 후다닥 우산 들고 뛰어나옵니다. “아유, 곧 가랑비 되겠어요!” 이슬비가 더 있으라는 거면 가랑비는 그만 가라는 거죠. 언제나 손치레에 힘든 건 안주인이니까.

손님이란 적당히 돌아갈 때를 알아야 한다는 속담이 ‘가는 손님은 뒤통수가 예쁘다’입니다. 옛날엔 상투 틀어 올려 뒤통수가 더욱 도드라지게 둥글었겠죠. 이제나 저제나, 대관절 언제 가나 싶던 손님이 드디어 저만치 돌아가니 그 뒷모습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아니겠습니까. 분위기 파악 못하고 눌러앉는 객이 오죽하면 이런 속담까지 나왔을까요. 게다가 먹고살기 힘들던 옛 시절에, 아침저녁 손님상 내려면 뻔히 뒤로 누구누구 돌아가며 굶었을 텐데요.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도 오래 머물면 그 집 식구들에게 폐도 그런 폐가 없습니다. 말 한마디 조심스럽고 더운데 꼭꼭 여미며 속옷바람에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내 집에서 내가 불편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붙잡는다고 눈치머리 없이 주저앉는 객이 꼭 있습니다. “벌써 가려고? 저녁 먹고 가지, 그래.” “그럴까?” “과일로 입가심이라도 하고 가.” “그럴까?” “시간도 늦었는데 자고 가는 게 어때.” “그럴까?” 어휴, 안주인은 속이 터집니다. 바깥양반도 주인 된 예의로 한 소린데 정말로 궁둥이 깔고 앉으니 아내와 식구들 보기 미안해 냉가슴만 끙끙입니다. 처음엔 식구들끼리 ‘저분 언제 가시나’ 하다 종국엔 ‘저놈 언제 가’ 눈짓과 입속말로 욕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저도 이형기 시인의 ‘낙화’ 한 구절로 운치 있게 마무리하고 ‘아냐, 됐어’ 달싹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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