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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참나리

opinionX 2018. 8. 14. 10:50

우주에는 굳이 중심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으로, 너는 너로, 모두가 다 중심이다. 죽음에도 중심은 없다. 떠나는 순서가 태어난 차례를 따르지 않는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빛의 속도가 일정한 것처럼 죽음도 한결같은 빠르기로 사방에서 늘 달려들고 있다. 내 나라에서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하지 못할 바다란 없다. 큰 나라처럼 무식하게 넓지 않아서 좋다.

어느 곳에서인들 저 무량한 하늘과 곧장 내통하지 않으랴만, 고흥은 우주와 직방으로 통하는 한 입구라는 생각에 몸이 들뜬다. 마음 한쪽에선 어딘가에 두고 온 심장과 연결되는 듯 쫄깃한 느낌도 일어난다. 소금을 품고 있어서일까. 멀리 낭떠러지 아래 길게길게 헤엄쳐온 시퍼런 바닷물이 해안을 짚으며 하얗게 포말로 부서진다. 세파를 헤치고 한 고비에 도착한 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것도 같은 현상일까. 이제 곧 어느 저편 언덕에 닿아 부딪혀 부서지라는 신호인 셈이겠다.

소금 때문에 바닷물이 상하지 않듯 죽음 덕분에 삶은 썩지 않는다. 우리가 연속적으로 사는 동안 옆구리가 늘 허전한 건 애인을 못 만나서가 아니었다. 생년월일에 열어둔 괄호를 아직 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많은 분들이, (생년∼2018), 이라고 그간의 살림살이를 단출하게 꾸러미한 뒤 언덕 너머로 이사했다. 아니다. 그분들을 두고 우리만 몽땅 오늘로 옮겨왔다고 해야 함이 옳겠다. 시금치 같은 시, 해바라기 같은 소설을 읽을 때 혹은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는 벼랑길을 걸을 때 떠오를 어른들의 얼굴도 있다.

멀리 내나로도의 야트막한 산머리에 흰 구름이 걸려 있다. 언제쯤 닫히는 괄호의 기슭에 도달하여 포옹하듯 그러안아 나를 보따리할 것인가. 흰머리를 쓰다듬는데 해안에 핀 참나리가 들어온다. 짠맛과 칼바람을 다스리며 위엄있게 바깥을 내다보는 참나리. 살아있는 이와 살아있지 못하는 이들의 명복을 모두 빌어주는 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 흔들리는 참나리. 꼿꼿하고 붉다. 참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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