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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없던 시절 여자 친구를 불러내려면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할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동네에 눈이 많으니 으슥한 밤에 만나야 하지만, 벼락같이 뛰어나올 애인 아버지가 안에 있으니 전전긍긍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수법을 씁니다. 언제든 내뺄 준비를 해놓고 창문 아래서 두 손 입에 모아 최대한 뻐꾸기 소리를 냅니다. ‘뻐꾹뻐꾹’ 계속 신호를 날립니다. 뻐꾸기가 밤에도 가끔 울기에 그 집 식구들은 무심히 흘려들을 겁니다. 하지만 몸은 가족과 있으되 귀는 창문에 붙은 아가씨라면 단박에 애인 뻐꾸기란 걸 알아채겠죠. 이제 여자 친구가 몰래 빠져나오기만 하면 미션 클리어. 이성을 꾀어내거나 ‘작업’을 거는 걸 속된 말로 ‘뻐꾸기를 날린다’고 하는데, 이런 은밀한 연애작전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집에 전화가 있던 시절이라도 애인이 때맞춰 전화 받을 공산이 낮고 식구들 눈초리도 있으니 작전이 필요합니다. 미리 통화 가능한 시간과 벨소리 횟수를 정해서 그 시각 그 벨소리 끊어지면 다음 전화를 냉큼 받아 소곤거렸지요. 사실 식구들이 모른 척해주기도 했을 겁니다. 전화기 곁에 붙어 앉아 괜한 딴짓을 하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식구들 몰래 숨죽여 밀어의 통화를 나누던 게 1980년대까지의 야밤 연애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을에 어디서 뻐꾸기 소리가 들리네요. 뻐꾸기는 여름 철새라 떠나고 없을 텐데요. 철없는 뻐꾸기들이 가짜뉴스들을 뻐꾹거려 정보 채널이 좁은 노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합니다. 지난 여름밤 꾀어내던 가짜 뻐꾸기 소리가 이 가을밤에도 통할 거라는 당찮은 수작이죠. 믿을 수 없는 헛된 소문을 ‘가을 뻐꾸기 소리’라고 합니다. 철모르고 가을에도 ‘밤뻐꾸기’ 날리는 가짜 뻐꾸기는 된서리 맞고 얼어 죽거나, 요놈! 하고 덜미 잡혀 다리몽둥이만 부러질 겁니다. 그러니 봐줄 때 그만 울고 여길 뜨세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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