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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6일 일본 시각 오전 8시15분, 미군 B29 전폭기가 히로시마 상공 9750m에서 ‘리틀 보이’로 명명된 원자폭탄 하나를 투하했다. 이름은 꼬마였으나,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57초 후, 폭탄은 상공 580m 위치에서 당시까지 인류가 보지 못했던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섬광을 직접 본 사람들은 즉시 눈이 멀었고, 뒤이어 생명체가 감당할 수 없는 열기에 휩싸였다. 히로시마 인구 25만5000여 명의 30%에 해당하는 7만여 명이 즉시, 또는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의 모든 생명체와 인공물이 완전히 소멸했으며, 11㎢ 이내의 건물 90%가 파괴되었다. 폭발로 생긴 거대한 버섯모양의 먼지구름은 상공 18㎞까지 솟은 뒤 하늘 가득 퍼졌다가 서서히 땅으로 떨어졌다. 이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 중 7만여 명도 반년 안에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 다수도 불치병에 걸려 여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일부 사람의 고통은 유전자를 통해 대를 이어 전해졌다. 사흘 뒤,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 원자폭탄 하나가 나가사키에도 떨어져 3만6000여 명이 즉사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군도 먼지의 살상력에는 주의하지 않았다. 8월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진주했다. 당연히 두 도시에 살았던 한국인들도 몸에 닿은 먼지가 남은 평생을 얼마나 괴롭힐지 몰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한국인은 7만여 명에 달했고, 그들 중 상당수가 해방 직후 귀국했다. 후쿠시마 인근에서 채취된 수산물이 수입될까봐 걱정하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라면 그들이 이웃에 사는 걸 용납하지 않았겠으나, 당시의 한국인들에게는 방사능 낙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피폭된 사람들에겐 이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자기 몸이 왜 아픈지도, 자기 아이가 왜 이상한 병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놀랍게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작년 5월30일부터야 시행되었다.

불교의 윤회설이나 유교의 음양오행설 등 순환론적 시간관에 지배받았던 한국인들에게는 본래 ‘세계의 종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말세(末世)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이는 한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시간개념이었지, 세계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공간개념은 아니었다. 반면 천년 이상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시작과 종말이 있는 역사 시간을 제시했다. 기독교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어 ‘최후의 심판’이 있을 그날까지만 전개된다. 이들 종교 문화권에서 최후의 심판은 일상적인 근신을 요구하는 공포의 원천이었다.

‘인류 최후의 날’, 또는 ‘지구 종말의 날’에 대한 생각은 제국주의보다 먼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날’에 대한 공포는 종교와 상상의 영역 안에 있었으며, 그런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본 뒤에야, 사람들은 ‘그날’이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릴 존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도. 신은 전지전능하고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존재지만, 인간은 실수투성이에 때로 악하기까지 한 존재다. 핵전쟁과 핵전쟁 이후의 시대를 소재로 삼은 소설과 영화들은, 대개 인류가 실수나 오해로 인해 최후를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원자폭탄은 인류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945년 이후 핵무기는 인류가 섬겨온 어떤 신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신을 숭배하던 과거의 습성 그대로, 핵무기를 기피하기보다는 그 은총을 얻으려고 경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가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로 나뉘어 있었다면, 현대의 세계는 핵보유국과 미(未)보유국으로 나뉜다. 핵보유국들의 기득권이 국제협약에 의해 강력히 보호된다는 것도 현대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은 핵확산금지조약이 공인한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저 나라들의 권리는 형식상 전 세계가 추인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저들 스스로 획득하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방송 전파를 타고 전 세계, 전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겨우 10개월 만의 일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이 역사적 합의가 실현된다면,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 보유했다가 폐기한 사례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북한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핵 위협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이 사라져도,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에 둘러싸인 땅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듭할 때, 미국과 한국 언론들은 ‘김정은은 핵무기를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들 했지만, 장래에 핵보유국의 군 통수권을 ‘위험한 인물’이 장악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한반도’가 아니다.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날이 사실상 ‘인류 최후의 날’이 될 거라는 사실은 여전히 불변이다. 앞으로 진행될 북한 비핵화 절차에서 인류가 고민하고 참고해야 할 것은, 자기들이 가진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는 핵보유국들을 ‘비핵화’하는 방안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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