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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아주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마을에 불이 나면 내 집으로 옮겨 붙을까 봐 불티를 뒤집어써가며 모두 같이 불을 끕니다. 하지만 강 건너편에서 난 불은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니 몸부림치고 아우성치는 화마가 강물에 어룽거리는 대단한 볼거리일 뿐입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난 불이 사람도 날아갈 바람을 타고 불벼락 비화(飛火)로 날아들어 몇 천 명이 대피하고 밤새 불안에 떨었습니다. 다행히 정부의 빠른 대처로, 전국에서 소방차 872대와 소방헬기 51대가 출동하고 군 병력까지 나서서 시뻘겋게 널름거리며 밀려들던 지옥불을 빠른 시간 안에 끌 수 있었습니다. 소방청으로 승격, 일원화돼 가능해진 전국적인 공조와 한 숨 안 자고 12시간 넘게 불길과 싸워주신 수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이지요(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이게 나라냐 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 이게 진짜 나라구나 싶었을 겁니다.

강원도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오전 초록빛이었던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야산이 불에 타 온통 시커멓다. 푸른빛을 잃은 산악의 풍경이 저 멀리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연합뉴스

불은 껐다지만 피해가 상당히 큽니다. 저걸 어쩌나 밤새 발 구르며 같이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물품을 모으고 성금을 보냅니다. 역시나 정 많고 합심 잘하는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길이 번져가는 와중에도 이를 빌미로 싫어하는 정당만 꼬집던 사람도 있었고, 긴급회선인 119로 전화해 나 도지사요, 했던 생각 없는 정치인은 조력도 위로도 없이 촛불정부가 아니라 산불정부라 비꼬고, 터전이 불타버려 망연자실하고 있는 곳에 정치홍보용 사진 찍으러 간 이도 있었습니다. 제 일 아니라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은커녕 팔짱 끼고 시시덕댄 이들을, 우리 또한 팔짱 끼고 잘 지켜봅니다. 남의 눈에 불똥 튀게 하다 제 발등에 불 떨어질 날, 꼭 있을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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