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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땅 속 불

opinionX 2019. 4. 9. 11:03

지금은 숲이 되었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난지도는 풀과 잡목이 드문드문 자라는 쓰레기 더미였다. 곁을 지나면서 땅속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거나 퍼런 가스 불이 올라오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 등에 자연발화한 불이 붙은 것인데, 3일 넘게 타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땅속 불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달 AP통신은 미국 아칸소주의 리틀록 인근 쓰레기 매립지 지하에서 7개월 넘게 불이 타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 정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이 쓰레기 매립장을 태우던 중 지하 20m 깊이에 묻은 산업폐기물에 옮겨붙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5일 동이 트기 전 강원 속초시 콘도 밀집지역 곳곳에서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전날 발생한 대형 산불로 속초 설악한화리조트 내 드라마 <대조영> 세트장이 전소됐고 관광객이 즐겨 찾는 동해안 일대 캠핑장과 한옥촌, 테디베어 박물관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강원일보 제공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땅속 불은 역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마을 센트레일리아(Centralia)의 화재일 것이다. 1962년 5월 쓰레기 매립장에서 시작된 불을 57년이 지난 지금껏 끄지 못하고 있다. 최초의 매립장 화재는 진압했지만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기를 거듭하다 지하 90m 아래에 있는 폐광산의 석탄층에 옮겨붙은 뒤로는 속수무책이다. 이 불로 인근 땅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 1979년 마을 주유소 탱크 10m 아래 온도가 537도로 측정되기도 했다. 1981년에는 집 앞에서 놀던 12세 소년이 땅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생긴 24m 깊이 구덩이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출됐다. 이후 인구 3000명의 소도시로 성장했던 이 마을은 이후 20년 만에 유령마을로 변했다.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 획기적인 화재 진압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땅속 석탄이 다 타서 없어져야 이 불이 꺼진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250년이라고 한다. 

강원도 동해안 산불이 꺼졌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잔불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조한 땅속 깊이 숨어 있는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송진이 묻은 소나무 뿌리에 불이 붙으면 땅속 불이 닷새까지도 탈 수 있다고 한다. 군이 열영상 장비까지 동원해가며 땅속 열점을 계속 탐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80%에 이르는 봄철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불씨를 잡는 게 중요하다. 땅 위에 보이는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땅속 불’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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