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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며칠 남지 않았다. 헌재는 임신 중지를 결정한 여성과 여성의 요청에 의한 의료인의 행위를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리를 침해하는지 판단한다. 판결의 핵심은 ‘낙태’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불가피하게 임신을 중단한 여성을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판결을 앞두고 일부 종교계는 ‘낙태죄’ 존치운동을 벌이며 ‘낙태죄’가 없어지면 ‘성 문란’과 ‘무분별한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 주장한다. 도대체 누구의 ‘성 문란’이 문제이며, ‘무분별한 낙태’란 존재하기는 하는가? 재미있는 것은 이런 주장이 1953년 일본의 형법을 본떠 형법에 낙태죄를 만들 때도 나왔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충분한 책임감과 고민과 자신이 처한 사회적 여건들 속에서 임신을 유지할지 중단할지 결정한다. 자신은 물론 태어날 아이의 전 생애에 걸친 존엄한 삶까지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정에 이른다. 그런데 누가 감히 이에 대해 ‘무분별’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111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낙태죄 위헌 촉구 1인 시위 100일 맞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무분별하다’는 말의 의미는 ‘사리에 맞게 판단하고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낙태죄’가 없으면 ‘무분별한 낙태’가 늘어난다는 말은, 여성들은 분별력이 없고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열등한 존재여서 부적절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으로 강력히 규제하여 여성들 스스로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는 명백한 여성에 대한 혐오이고 차별이다. 

‘성 문란’은 어떤가? 이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성별은 남성인가? 대부분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순결-정조-성 문란’은 여성에게만 연결되는 성별화된 언어다. 많은 여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문란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선망하는 능력 있는 남성의 표상이다. 남성에게 성은 때론 폭력까지도 용인되는 ‘자유’의 영역일 뿐이다. 최근 확인된 정준영 카톡방 문화가 그 단적인 증거 아닌가? 결국 ‘낙태죄’ 폐지 반대의 핵심은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는 것, 보다 정확히는 여성이 성적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반대이다. 얼마 전 교황이 신부에 의한 수녀 성폭력을 인정했다. 그런데 해결책은 놀랍게도 수녀원 폐쇄였다. 이들이 삼고 있는 통제와 처벌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장면이다.

‘낙태죄’는 여성을 국가 인구조절정책의 도구로 삼고, 국가에 순응하지 않으면 처벌로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의 논의 기록에 있는 사실이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과 능력, 권리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통제하고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 국가를 위해 여성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낙태죄’의 본질이다. 여성은 더 이상 이등시민이 아니다. 이제 출발부터 차별을 전제했고, 차별을 유지·강화해온 성차별 악법인 ‘낙태죄’는 폐지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에 대한 처벌과 통제가 아니라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삶을 풍성하게 구성하고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선택지를 보장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사라질 때 그 선택지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2019년의 정의와 인권 규범에 맞게 헌법재판소가 정의로운 판단을 할 것을 믿는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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