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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근무하던 지역에서 학교폭력갈등조정단으로 활동할 때 지원요청이 들어왔던 사안이 있었다. 피해진술은 구체적인데 신고된 학생은 그런 일이 없었다며 며칠째 부인하고 있었다. 학부모는 담당교사가 면담과정에서 아이를 협박했다며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맞서고 있어서 학폭조치가 내려져도 양쪽 모두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고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지속적인 손상을 입게 될 상황이었다.

이 손상을 중단하려면 학생들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온전히 성찰하여 자기 책임을 배우고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마음에 이르도록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학생과 만나 첫 질문을 했다. “지금 심정이 어때?” 사실이 아니며 억울하다는 학생의 대답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생님은 이번 일로 너의 학교 생활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흙구덩이에 넘어졌더라도 잘 털고 일어나서 네가 가려고 했던 길을 계속 잘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사실을 밝히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서 그 점은 상대가 용서해주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학생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대화의 목적지를 찾았고 이제 그 방향을 잃지 않고 가면 되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선생님하고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찾아볼까?” 그 후 대화과정을 통해 학생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되짚어보면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하나씩 천천히 펼쳐졌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존귀한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진정한 회복과 성장은 이 선한 의지를 불러오고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가능하다. 대화가 끝났을 때 학생은 지금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다고 하였고 상대 측에서 동의하여 부모들까지 참여한 대화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신고된 학생은 자신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상대가 무엇을 알아주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는 감정과 의혹을 충분히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신고한 학생도 몇가지 미안했던 점을 말하게 되었다. 이후 온전한 학교생활을 위해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 함께 약속을 정하면서 부모들의 안도와 감사 속에 모임을 마쳤다. 2주 후에 다시 만났을때 두 학생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 좋았으며 지금처럼 지낸다면 추가적 약속이나 처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가 “누가 그랬어?”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제가 안 그랬는데요”라고 답한다.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 “저만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잘못을 가려내어 교실의 정의를 세우려 한 이 질문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진실의 뒤에 숨도록 가르친다. 배움의 기회를 빼앗는 이 슬픈 질문은 오랫동안 교육현장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교육이란 사법적 행위가 아니라 배움과 성장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학생들이 넘어지고 실패하는 그곳에서 배움과 성장을 창조할 때 교육은 비로소 자기 전문성을 갖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함께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서로 마주 앉을 수 있는 용기이다. 이 용기가 학교폭력의 고통으로부터 아이들을 회복하고 배움과 성장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다.

<조춘애 |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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