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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닫힌 변기뚜껑이라고 합니다. 다들 한 번쯤 뚜껑을 열었다 질겁하고 닫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또 바퀴벌레에 식겁한 적 있으면 부엌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박씨 보고 바퀴벌레인 줄 알고 덜컥 놀랐을 테지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자라는 위급해지면 순식간에 목이 몸길이만큼 쭉 늘어나 강한 턱과 이빨로 무는데, 자라한테 물리면 자칫 손가락이 잘릴 만큼 위협적입니다. 과거 자라에게 물린 뻔한 경험이 있다면 침침한 부엌에 놓인 가마솥과 그 긴 손잡이를 보고 순간 자라로 착각해 움찔 놀랄 겁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고슴도치에 놀란 범 밤송이 보고 놀란다’가 있습니다. 마른 밤송이의 색깔과 모양이 고슴도치와 매우 흡사하니(지금의 애완용 회색 고슴도치는 토종이 아닙니다), 잘못 건드려 주둥이에 가시 수십 개 박혔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한낱 밤송이에도 산중호걸이 겁을 먹습니다. 그리고 ‘국에 데면 냉수도 불어 먹는다’, ‘불에 놀라면 부지깽이 보고도 놀란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불을 쑤석일 때 쓰는, 끝이 불탄 부지깽이 작대기만 봐도 불길이 활활 번지던 공황상태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 쿵, 심장 벌렁, 숨도 가쁩니다.

트라우마(trauma)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있습니다. 천재지변이나 사고, 폭행, 학대 등으로 겪은 충격이 잠재의식에 남아 일상에서 또는 비슷한 상황에서 우울과 불안, 공포에 사로잡혀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수많은 소방관들은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인원과 형편없는 지원 탓에 휴식과 치유는 언감생심이었겠지요. 이번 정부의 소방청 독립과 ‘복합치유센터’ 건립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면서도 죽고 싶다 생각하는 분들을 살리는 그 한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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