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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밴 땀 냄새와 손때는 5년의 세월과 사람들의 흔적이다. 

서울 광화문역 지하 1층 5·6번 출구를 향해가는 길목에 있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광화문공동행동)’ 농성장. 국가가 책임져야 할 18명의 영정과 살아있는 이들의 숨결로 지켜온 광화문 농성장이 오는 5일 철수를 앞두고 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는 한국 사회 복지제도의 적폐를 겨눈다. 가난의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며 빈곤 사각지대를 낳는 악순환, ‘폐 끼치기 싫어 죽음을 택하게 하는’ 부양의무제.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 범주와 유형을 나누고 등급을 매겨 서비스를 차등·제한하여 ‘주어진 만큼만 살라’는 장애등급제. 모욕의 경험, 모순적이게도 국가는 복지제도로 인간다운 삶을 모욕한다.

2012년 8월21일, 광화문공동행동은 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를 위한다는 제도가 국가행정과 예산에 맞춘 삶을 강요하는 폭력임을 폭로하였다. 권리로써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싸움이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의 농성장 맞은편에 사망한 장애인들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나 비를 맞으며 집회를 끝내고 광화문역 지하로 이동하는 이들에게 국가는 폭력으로 답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전기를 끊어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정지시켰다. 이동수단이 묶인 장애인들은 계단을 기거나 휠체어와 몸이 들려서 지하로 내려갔다. 기는 이, 이를 보조하는 이, 지켜보는 이의 몸은 땀과 눈물과 비로 범벅되었다. 절규 같은 구호로 분노를 쏟으며 스티로폼과 깔개로 지새던 밤이 지나고, 천막을 치고 서명판이 펼쳐졌다. 

그 후 농성장은 일상이 되었다. 서명 용지를 채우고, 휴지통을 비우고, 사수 일정을 짜고, 1인 시위와 집회도 하고, 연대투쟁도 결합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지난 5년은 힘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과 얼굴 다른 이들이 몸으로 쓴 연대의 역사다.

정부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라. 정부의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년)’의 국민기초생활보장계획은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고, 의료급여와 생계급여는 노인과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가구에 한해서만 2022년까지 단계적 폐지를 밝혔다. 평균 급여액 8만원가량인 주거급여 폐지가 생색내기 정책이 되어선 안되며, 완전 폐지되어야 한다. 

장애등급제는 3차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개편안을 만들어 2019년에 단계적으로 폐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등급제를 대신하는 ‘종합 판정 도구’도 예산확보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다. 2017년 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은 1조9000억원인데, 이는 정부 총예산 대비 0.4%, 복지부 전체 예산 대비 3.4%다. 부족한 예산은 이름만 바꿔 생색내기 한정된 서비스가 되어, 권리의 통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8월25일 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애등급제 폐지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통한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독립생활 지원, 탈시설, 지역사회 중심으로 장애인 정책 방향 전환,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기억해 주시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광화문농성장, 여러분이 참여했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100만 서명운동’을 말이다. 농성장 철수는 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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