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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인 모 사단 훈련병 시절, 당시 사단장이 참 독특한 분이었습니다. ‘일석삼조’라면서 소변보면서 뒤꿈치 들어 하체 단련하고 머리로는 하루 일과를 생각하라는 등 매사에 세 가지를 동시에 하라는 지침을 내렸거든요. 발등에 오줌 떨어지겠다며 투덜대던 사람이 많았지만요.

사실 두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며 탬버린까지 흔들진 않더라도 노래 들으며 손발 놀리면서 흥얼거리는 것 정도는 일상다반사죠. 특히 생각이 필요 없는 길고 단조로운 일을 하고 있을 때라면 어차피 노는 입인데 노래라도 부르면 무료한 시간 속에 기분이라도 나아집니다.

가만히 있거나 하릴없이 노느니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노는 입에 염불’입니다. 이 속담은 고려 말 나옹화상의 ‘승원가’에서 유래합니다. ‘… 농부거든 농사하며 노는 입에 아미타불/ 직녀거든 길쌈하며 노는 입에 아미타불….’ 두 손과 두 발은 일하는 데 쓰더라도 멀쩡한 입 놀리지 말고 마음 다해 염불을 하라는, 생활 속 수행을 강조한 시입니다. 대단한 염불도 아닌 그저 ‘아미타불’만 일하는 박자에 맞춰 외라는 것이지요.

해서 ‘나는 노는 입에 무얼 하고 있나’ 곰곰이 생각했더니 흥얼도 중얼도 없이 무표정 일색이더군요. 대중교통 안이나 길거리, 사무실, 집에서 오로지 입 꾹 다물고 갈 길 가고 할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언제 어디서든 노는 입으로 할 만한 게 뭐 있을까?’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여러 생각 끝에 얻은 답은 빙긋한 ‘염화미소’였습니다. 그래서 걸으며 일하며 입꼬리 살짝 미소 머금는 습관을 들였더니 길에서, 편의점 계산대에서, 일하고 만나는 가운데서 보기 좋고 편안한 사람에 소화까지 잘되더군요. 그래서 극락(極樂)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짝 올린 입꼬리에 기분도 일상도 좋아지는 이 ‘노는 입에 미소’를 여러분께도 한번 해보시라 추천해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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