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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만났다. 김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전교조에 내린 법외노조 통보를 노동부가 공문으로 취소할 수 있는지를 법률 검토하여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하여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2013년 10월에 법외노조 통보 조치를 받은 지 5년째인 이 답답함이 드디어 해결되는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기대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깨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권취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그것을 바꾸려면 대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기존 판결을 번복하는 방법과 관련 노동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장관의 발언이 자칫 노동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비칠까 서둘러 진화하였다. 김 대변인의 브리핑 발언은 좀 복잡한 듯하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가한 ‘노조 아님 통보’ 조치는 법률에 근거한 정당한 것이어서 법률을 개정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다.” 김 대변인의 말은 마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합리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행정 조치를 취한 사례는 벌써 두 번이나 있다는 사실은 왜 빼놓았을까.

사실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근거가 된 법 조항은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이었다. 법률 조항도 아니고 행정부가 정한 명령 조항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박탈해 버린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게 무리하게 전교조를 손본 것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 청와대였음이 국정농단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속속 드러났다. 그런 박근혜 정권의 폭주에 정당성의 비단 옷을 입혀 준 게 바로 사법부 권력이었음이 최근 드러났다. 그러함에도 다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라니 말이 되는가. 박근혜 정권의 노동부가 공문 한 장으로 수만명이 가입해 있는 노조를 부정하는 직권 남용을 한 사건을 바로잡는 것은 바로 촛불정권 노동부의 공문 한 장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전교조 6만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정의와 사회규범을 가르치면서 촛불시민혁명으로 등장한 정부가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지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몇년 전에 모 언론사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당하고 있는 전교조에 ‘네가 변해야 한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제발 그의 이번 브리핑이 혼자만의 돌출 발언이었기를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이 정부도 부지불식간에, 호남을 끼워주지 않는 소수로 만들어 항상 정치적 승리를 누렸던 영남 중심의 보수 정치권력처럼, 민주노총이나 전교조를 소수 좌파로 만들어 정치적인 이익을 누리고 싶은 건가? 절대로 그런 게 아니기를 바란다. 전교조에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온 죄밖에 무슨 큰 죄가 있는가. 더 이상 전교조를, 교사들을 억지 심청이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다수의 상식을 가진 흔하디 흔한 교사들로 이루어진 전교조에 ‘좌파빨갱이’니, ‘종북좌파’니 하는 과분한 호명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의 정의와 진실은 지금까지 너무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그 한가운데를 지나온 전교조 교사로서 너무 힘이 든다. 왜 우리 교사들의 기본권은 촛불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가. ‘나라다운 나라’는 왜 전교조 앞에서, 교사들 앞에서 멈추는가?

박근혜와 한통속 사법부가 전교조에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된 지금도 전교조 합법화가 부담스럽다면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가운데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이 중 10곳에서는 전교조 교사들이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국민들은 전교조와 함께 힘 있게 교육개혁을 추진해달라고 표를 준 것이다. 망국병 입시전쟁도 개혁하고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공동체를 만들어달라고 말이다. 설마하니 개혁을 주장하는 전교조가 부담스러워 지금처럼 법외노조 정도로 가두어 두려는 것인가?  전교조에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고, 함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길만이 촛불정신을 받드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성대 | 전교조 서울지부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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