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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성능을 올리려면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몇 개 더 추가하면 된다. 예를 들어 알파고는 이세돌과 바둑을 둘 때, 판후이와 바둑을 둘 때보다 718개의 중앙처리장치와 104개의 그래픽처리장치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처리장치가 많아지면 성능도 좋아지지만 전기요금도 많이 내야 한다.

■ 먹고사는 일과 신경계

지구상에 온갖 생명이 다녀가며 진화가 이뤄지는 동안, 크고 복잡한 신경계를 가진 생물도 점차 많아졌다. 전기요금을 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생명체가 신경계를 감당하는 일은 갈수록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충분한 에너지를 섭취하며 먹고사는 일은, 생명체의 크기와 모양과 삶의 방식을 바꿀 만큼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풀잎은 흔한 에너지원이지만 영양가가 낮아서 대량으로 섭취해야 한다. 그러면 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날아다닐 수가 없다. 날아다니려면 꿀이나 수액을 먹어야 하는데, 꿀은 계절에 상관없이 쉽게 얻을 수가 없다. 곤충들은 절묘한 방식으로 여기에 적응했다. 풀잎을 먹는 애벌레 시기에는 기어다니면서 오로지 먹기만 한다. 하지만 기어다니기만 해서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거나 자손을 널리 퍼트릴 수 없다. 그래서 애벌레 시기를 거쳐 몸집이 충분히 커진 다음에는 변태하여 날아다니면서 자손을 퍼트리고, 날아다닐 때부터는 풀을 먹지 않는다.

신경계는 특히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사람의 경우, 뇌의 질량은 체중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신체가 섭취하는 전체 에너지의 25%나 소모한다. 신경계가 커지려면, 비싼 신경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도 생겨야 한다. 사람의 뇌가 커진 것도 에너지 섭취와 관련된다. 인간의 뇌는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의 뇌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신경세포의 숫자가 가장 많다. 이렇게 많은 신경세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날것을 먹는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음식을 불로 익혀서 먹기 때문이다. 화식을 하면 소화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든다. 그래서 하루 30분씩 3끼만 먹고도 비싼 뇌를 유지할 수 있다.

■ 에너지 효율적인 구조

신경계가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이 동원되었다. 신경 네트워크의 구조를 살펴보자.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들끼리 소통하지 못하면 정보의 통합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뇌 속에 있는 모든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되면 연결에 필요한 부피가 늘어난다. 그러면 커다란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도 증가한다.

그래서인지 뇌 속 신경 네트워크에서는 한 신경세포가 다른 모든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신경세포가 일부 신경세포들과만 연결되고, 몇몇 신경세포가 마당발처럼 유난히 많은 연결을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를 작은 세상 네트워크라고 한다. 이런 구조를 취하면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들 간의 신호 전달을 허락하면서도,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부피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위 그림의 A처럼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축삭돌기가 다른 하나의 신경세포만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면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부피가 커진다. 그림 B처럼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축삭돌기가 가지를 쳐서 근처에 있는 신경세포들까지 연결할 수 있으면 더 효과적이다. 신경세포의 축삭돌기는 실제로 이렇게 가지치기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축삭돌기와 연결되는 신경세포들이 수상돌기에서 가시처럼 뾰족 튀어나온 구조물(스파인)을 뻗을 수 있다(그림 C). 이렇게 하면 수상돌기 전체를 굵게 만들지 않고도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을 늘릴 수 있다. 실제로 신경세포는 평균 수천개의 스파인을 가지고 있다.

알뜰한 구조를 위한 신경계의 절실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긴 축삭돌기들은 대뇌 피질의 안쪽에 모여 있다. 반면에 가까운 연결들이 많은 회색질은 대뇌 피질의 바깥에 있다. 이렇게 구분되어 있으면, 가까운 연결들의 길이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긴 축삭돌기의 굵기를 늘려서 먼 부위들 간의 정보 전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축삭돌기를 따라 전기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는 축삭돌기가 굵을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뇌의 피질은 구불구불 주름져 있다. 주름진 피질 구조는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거리를 줄여준다. 또한 상호 연결이 많은 뇌 영역들은 위치상으로 인접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연결에 필요한 부피가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신경계의 구조만 설명했지만, 신경계의 활동을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 설명하는 이론도 있다. 이 이론에서는 신경계가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량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동작한다고 본다.

■ 제약이 디딤돌이 될 때

이처럼 신경계의 구조와 활동은 제한된 에너지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 다듬어졌다. 제약 조건 때문에 ‘얻어걸렸’을지 모를 구조적 특징들의 일부는, 높은 인지 능력과 관련된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이 추정이 사실이라면 제약 조건이 디딤돌이 된 셈이다.

자연에서는 이런 일이 더러 일어난다. 태양계를 벗어나는 우주선은 목성의 중력을 원동력으로 사용해서 우주선의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어렸을 때 과학관에서 처음 이 원리를 보고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어찌 보면 목성에 우주선을 묶어두는 제약 조건인 중력이, 우주선이 더 빨리 목성을 떠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제약 조건도 많겠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유리한 조건으로 변할 수 있는 제약 조건도 있는 모양이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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