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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추리소설계의 황제라 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마쓰모토의 작품 중에는 픽션 외에 논픽션들도 꽤 있습니다. 지금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처럼 미궁에 빠진 실제 사건을 추적하여 재구성한 것이죠. 그 가운데 <두 사람의 진범>이란 미스터리 논픽션이 있습니다. 살해 용의자로 체포한 사람이 죄를 자백했지만 공판에 가서는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합니다. 사건이 떠들썩해지자 진짜 범인이 화가 나서 자수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끝까지 애초의 용의자를 진범으로 밀어붙입니다. 경찰의 위신을 지키고 조작한 증거물들을 감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결국 ‘진짜 진범’이 형을 받게 되었지만 경찰은 그 뒤로도 자신들이 ‘만든 진범’을 한동안 석방하지 않습니다.

가끔 방송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몇 십 년 만에 누명을 벗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공권력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수사로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과 그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가정이 무너진 채 비참하게 살아온 것이죠. 증거가 없고 정황만 있는 상황이거나 오리무중으로 시간만 흘러 상부의 질책이 내려올 때, 적당한 누군가를 사건에 꿰맞춰 협박과 고문으로 자백을, 그렇게 범인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속담에 ‘늦게 잡고 되게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늑장 부리다 다급해져 함부로 서두르거나 애를 많이 먹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되게 친다’는 ‘심하게 때린다’는 뜻 같지만, 사실 ‘(사건이/범인이) 되게 때린다’는 것이 숨은 맥락입니다. 당장의 자기 면피를 위해 범인 아닌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일이 있었을 겁니다. 일상의 평범한 사람을 사건의 지도와 동선에 올리고 구색 맞춘 증거와 시나리오대로 강제로 자백하게 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오로지 어제의 일이어야만 하겠지요. 죄가 되게 만드는 건 공권력 범죄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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