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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시인의 책방

opinionX 2017. 11. 13. 11:43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시 낭독이 이 대목에 이르자 청중들 사이에서는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지난주 어느 저녁 일산 호수공원 옆의 작은 책방에서였다.

김이듬 시인이 본인 표현대로 ‘겁도 없이’ 차린 책방이듬에 그날 모인 사람들은 서른 명이 넘었다. 평론가 임우기 선생이 먼저 기형도의 시들에 대해 길안내를 하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한 편씩 그의 시를 읽는 모임이었다. 어깨를 맞대거나 무릎을 부딪치지 않고는 도저히 서른 명이 앉을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기형도의 ‘나리 나리 개나리’에서 시작하여 두 시간이 넘는 동안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 막바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시인이 자문을 청해왔을 때 나는 무작정 말렸다. “책도 팔고 커피도 팔고 강연회도 열고 하는 중고책방 겸 카페예요.” 책방인지 북카페인지 정체부터가 아리송한 카페를 하겠다는 시인의 낭만주의에 나는 어줍지 않게 ‘고상한 밥벌이’라는 말을 써가며 훈수를 두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은 온갖 잡일과 세무서와 식품위생법과 월세에 관련된 일들에 몸과 마음을 탕진해야 하는 밥벌이라면서 비관적인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서 시인은 정말로 책방 겸 카페를 열었다.

책방이 자리 잡은 곳이 출판사 인근인 탓에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그곳을 드나들었다.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커피 한잔 청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고, 와인코르크가 막혀 발을 구른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가서 마개를 따주고 돌아왔다. 늦은 저녁 술이 조금 더 필요해서 들른 작가와는 처음 인사를 나누는 주제에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맥주 몇 잔을 비우기도 했다.

책방이듬을 드나들며 몇 가지 놀란 점들이 있다. 책을 만들고 팔면서 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버릇이 입에 밴 출판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이렇게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새삼 놀랐다.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책의 판매지수와 독자연령대와 지역별 분포를 늘 분석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들이 어떤 기대와 요구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믿을 만한 누군가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경험을 제공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시인의 책방은 안성맞춤이었다. 풍광이 좋은 공원 옆의 우리 동네에 시인이 작은 책방을 열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신기해서 들어오고, 궁금해서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한 시간씩 책을 읽다 갔다. 동네주민도 들어오고, 작가들도 찾아오고, 시 한 편을 낭독하겠다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늦은 시간의 책방을 가득 채웠다. 자율방범대로 봉사하는 엄마들 셋은 밤거리를 순찰하다가 이 동네에 20년 넘게 살았는데 이런 모습 처음이라며 사진을 찍어갔다.

동네에 책방이 하나 생기면 무표정하던 그 거리에 ‘의미’가 생겨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 뭔가 마음을 줄 만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점이 하나 생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 공간적 동질성 외에는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지역이 책방 하나로 인해 뭔가 의미의 공동체로 바뀐다.

사람들이 책읽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그것이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어렵고 고립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의 책읽기, 믿음직한 큐레이터로서 주인장이 길잡이해주는 책읽기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 한다. 좋은 동네책방은 그런 역할을 한다. 그곳이 시인의 책방이라면 더할 게 없다.

나부터가 시집을 안 읽은 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원래 문학에 대해서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낭비가 싫어서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는 터였다. 이성의 사도 플라톤이 시인과 문학을 폴리스로부터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차라리 동감하곤 했다. 그러나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에서 플라톤과는 반대로 ‘감정의 합리성’이란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공리적 계산에 따른 정의가 아니라 공감과 연민에서 나오는 정의가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공동체적 가치는 문학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나는 문학의 효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산 한구석에 자리 잡은 시인의 책방에서 말이다.

그날 내가 10년 만에 펼쳐든 시는 기형도의 ‘늙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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