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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9월23∼24일) 222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정조대왕 능행차’를 아시리라. 서울시와 수원시, 화성시가 공동 주최하고 6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여 59.2㎞의 대장정에 연인원 4580명과 말 690필이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의 문화행사.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를 위해 연 행사였지만, 수원 화성 축성의 점검 및 장용영 군사력을 재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속내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가 남긴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번역했기에 이 같은 재현행사가 가능한 것은 불문가지.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대제’(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함)도 <종묘의궤>를 번역했기에 의식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에서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조선왕조 의궤>도 익히 아시리라. 의궤는 조선왕조 500여년 중 300년간의 각종 왕실의례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의례 준비, 시행, 사후 처리 등과 관련한 왕명, 공문, 논의 내용, 동원 인원, 업무 분장, 소요 기물과 비용, 제작과 조달, 의식의 제도와 절차, 시행방법 등이 글과 그림으로 요즘 말로 엄청 디테일하게 기록돼 있으므로 오늘날의 ‘백서’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가례, 국장, 연회, 궁궐 건축, 왕릉 조성 등에 관한 630여종의 기록물이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기에는 일본 궁내청에서 반환한 의궤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의 의궤도 포함돼 있는데,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확인하여 영구임대방식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의궤는 왕실사, 생활풍속사, 사회경제사, 미술사, 음악사 등을 망라한 조선시대 역사연구의 기초사료이자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하지만 현재 전체 630여종 가운데 38종(전체의 6%선)만이 번역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 계획 없이 개별 기관이나 연구자의 단발성 번역 추진 등으로 인해 동일 서종을 중복 번역하거나 번역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소장기관과 번역 추진기관과의 협조체계가 원활치 못하여 제때 번역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의궤는 관련 분야 연구자의 번역에 대한 수요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지대하므로, 현재의 어지러운 번역 상황을 개선하려면 국가적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그 계획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들의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만시지탄이라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630여종 중에서도 번역이 시급한 중요 의궤 200종 400책을 선정하여 우선적으로 번역, 출간하는 것이 ‘제2의 한류’를 추동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 인력의 고용 창출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영록 | 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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