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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예술을 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몇 주째 소화가 안된다. 장애인의 몸이 표현하는 예술의 가능성과 긍정성을 취지로 한 말일까.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그 예술이란 과연 무얼까. 이런 말이 불편한 건 성격 탓일까. 답답하던 차에 한 문화연구자의 “연극적인 것을 배반하는 ‘춤추는허리’ 연극의 공연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명치가 뚫린다. 진짜 예술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과연 진짜(정상)가 뭘까를 묻는다. 

내가 참여하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는 장애, 몸, 예술, 배우. 섹슈얼리티, 독립 등에 대한 사회의 정상적 규범을 연극으로 질문한다. 지적장애 여성 배우는 연습장에 대사를 10번 이상 적으며 자기에게 익숙한 말을 찾기도 한다. “너무나 감동했어요. 저는 지금 장애 극복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지적장애 여성은 이 대사를 “감동이에요. 장애 없어요”로 바꿨다. 대사를 바꾸며 자기 말을 만드는 과정이다. 

비정상성을 무대에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 전문적 훈련을 통해 정상적으로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 자기 장애를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대사와 몸짓을 싣는다. 비장애인처럼 정확하게 대사를 발음하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몸이 편안하게 움직이는 방향대로 이동시켜 보고 내 호흡과 경련, 뻗침의 주기와 박자를 깨닫는다. 늘 몸과 살아가지만, 내 몸을 상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움직이지? 어디가 아프고 안 움직이지? 움직이기 어려운 곳을 억지로 쓰려 하진 않지만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호흡과 박자를 파악했을 때 배우는 연기가 편안해지고 잘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아프거나 움직이지 않는 몸의 어떤 부위는 연기할 때 배우들에게 긴장을 일으키는 요소다. 쉽게 말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순간, 관객은 긴장한다. 자기 몸을 ‘제대로’ 아는 배우는 이 긴장을 가장 먼저 안다. 이 긴장과 함께 무대에서 1~2시간을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한 장애 여성 배우는 다음이 어디로 갈지 안다. 가장 나다운 동작을 하는 와중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몸의 긴장에 익숙해진 것이다. 보여지는 대상으로 전시되는 것을 거부하고 내 몸을 보여주는 장애 여성 배우가 의도한 ‘무대 위의 일’일지도 모른다. 매일 장애와 살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장애등급제가 7월부터 폐지된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의 경우 이용자 수와 월평균 시간 등을 확대하려면 올해보다 7284억원의 장애인 복지 예산이 인상되어야 한다. 한정된 예산에 끼워 맞추면 지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장애 여성 배우는 뇌변장애, 지적장애, 시각장애… 진단과 장애명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에선 서비스 기준과 양에 맞춰야 하는 처지다. 532점 만점의 종합조사표는 변화된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의학적 기준으로 진짜, 가짜 장애인을 판별하고 낙인찍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장애인의 몸과 삶을 다시 서비스 등급으로 세분화시킨다. 옷 갈아입기, 목욕하기, 구강 청결, 옮겨 앉기, 약 챙겨 먹기, 물건 사기 등 기능 제한 조사 항목에 장애를 끼워 맞춰야 한다. 이 질문이 장애인의 몸과 삶, 사회적 차별을 담아내고 있는가. 장애등급제가 ‘진짜’ 폐지되어야 장애와 정상에 대한 ‘진짜’ 질문이 시작될 수 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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