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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필로소피)의 ‘개소리’는 영어 ‘bullshit’의 번역어다. 번역자 이윤은 ‘헛소리’로 옮길까 하다 ‘non-sense’와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개소리로 번역했다고 한다. 헛소리엔 무의미한 말이라는 뉘앙스가 있지만, bullshit에는 화자의 숨은 의도가 있다는 저자 논지를 따르려고 했다고도 한다.

개소리란 무엇일까? 소논문 분량의 이 철학책엔 비트겐슈타인이 1930년대 초 러시아어 개인 교사였던 파니아 파스칼을 문병 갔을 때 일화가 나온다. 편도선을 제거하고 요양 중이던 파스칼이 “마치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에요”라고 죽는 소리를 하자 비트겐슈타인은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

저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 해리 G 프랭크퍼트는 이 일화에서 개소리의 의미를 분석해나간다. ‘비트겐슈타인은 파스칼이 진실에 대한 관심 없이 말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프랭크퍼트는 추정한다. “파스칼은 진술의 정확성이라는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진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프랭크퍼트는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했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거짓말과는 어떻게 구분할까.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프랭크퍼트는 말한다. 거짓말을 지어내려면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릿값에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큰 진리의 적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 같은 사람과 일상 대화를 해나가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내뱉는 엄살과 과장,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도 ‘개소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프랭크퍼트가 비판의 지점으로 삼는 건 공적 사안에서 자신의 이익과 속셈을 위해 내뱉는 개소리들이다.

개소리의 뜻과 범주를 확장하는 이 책은 한국 사회 막말과 망언을 분석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한국의 공적 영역엔 사실, 진실, 진리엔 전혀 관심 없이 내뱉는 ‘개소리’들로 그득하다. 최근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가장 부합하는 건 목사 전광훈의 말일 것이다.

“(문재인이) 그의 (주체)사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인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군대를 비롯하여 언론, 정부, 시민단체까지 주체사상을 통한 사회의 국가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다.” 최근 수사조정권을 둘러싼 청와대와 검찰 간 갈등이나, 노동 문제를 두고 벌어진 정부와 민주노총의 대립에 관한 언론 보도를 한두 줄만 봐도 이런 말을 하긴 어렵다.

전광훈의 말들이 대개 이런 식이다. “세월호 사고가 난 거 좌파, 종북자들만 좋아하더라” “전교조에서 성을 공유하는 사람은 1만명이다.” 전광훈의 말은 혐오, 배제, 추방으로 점철된다.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은 사탄”이라고도 했다. 전광훈을 포함한 한국형 ‘기독교 우파’는 ‘북한’ ‘이슬람’ ‘동성애’ 3대 키워드로 극우 세력을 결집하려 한다.

‘전광훈류’와 단절하고 싶은가? 극우 세력의 ‘개소리’에 대안과 대책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진보개혁’을 자처하는 이들이 차별금지법 문제를 두고 전광훈 앞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밝힌 게 몇년 되지 않는다. 선거철 표계산을 두고 벌어진 어정쩡한 타협과 이상한 관용, 부끄러운 굴복은 오늘의 전광훈류를 강화·확산하는 데 일조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당시 야권 의원들이 낸 의원 입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현 대통령도, 현 총리도 당시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동성애와 양성애 등 ‘성적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은 2013년 2월20일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발의됐다. 이낙연도 이름을 올린 이 법안은 제안이유를 이렇게 썼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대부분의 인권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음.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엔 인권이사회, 유엔 경제문화사회적 권리위원회 등에서 차별금지법 채택 권고 및 촉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음.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일임.” 6년이 지났다. 20대 국회에서 정부 발의건 의원 발의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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