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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계획을 세우노라면 옆에서 초를 칩니다. “퍽이나!” 곁에서 늘 보아오던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알기에 살짝 무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엔 다르다고 궁색한 항변을 해보지만 역시 돌아오는 말은 “그래, 해가 서쪽에서 뜨면”입니다. 12월31일까지 하지 못한 것이 해 바뀐다고 달라질 리 없다는 비웃음입니다.

실없는 소리, 실행 못할 장담을 많이 하고 또 지겹게 듣고 사는 우리입니다. ‘개가 콩엿 사 먹고 버드나무에 올라가겠다’ ‘태산이 바람에 쓰러지거든’ ‘솔방울에서 딸랑 소리 나거든’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거든’ ‘당나귀 뿔 날 때까지 기다려라’ 등등 절대로 못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뜻하는 속담은 그래서 참 많습니다.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의 숱한 결심을 봅니다. 좌우명처럼 딱 붙여놓기도 하고, 크게 공표하기도 하고, 지키지 못하면 성을 갈고 명동 한복판에서 팬티바람에 춤을 추겠다던 그 크고 많은 결심들이 옳게 지켜진 경우를, 우린 과연 몇 번이나 보았을까요. 그럼에도 우린 새해가 다가오면 ‘새해’라는 단어에 또다시 의미를 부여합니다. 뭔가 새로워질 수 있겠다는 주술적인 희망이겠지요. 한해에도 작심삼일만 골백번이었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꼭 여태까지와 다른 내가 되고 싶다고 깊이 소망합니다. 그러나 사실 결심이 클수록 그만큼 의지가 약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각종 도구들을 장만해보지만 도구를 쓰는 건 역시 인간입니다. 도구를 사용할 ‘의지’가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수십 년을 어제처럼 산 오늘의 나입니다. 오늘의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늘 어제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결심들은 땅속에 묻힐 때야 비로소 끝납니다. 그러니 신년 계획 아래 이 속담을 반어법으로 달고 매년의 흐지부지를 경계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겠다!’ ‘배꼽에 노송나무 나거든.’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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