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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돌무더기 탑이든 석탑이든 밑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집니다. 기초가 넓고 튼실해야 더 높이 쌓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돌탑의 중간쯤에서 헐거워진 돌들이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당연히 꼭대기가 건들거리겠죠. 저러다 무너지지 싶어 급한 대로 돌탑 아랫부분에서 돌 몇 개를 뽑아 빠진 부분을 고입니다. 그러곤 안도하고 잊어버립니다. 그것이 반복되자 결국 기초가 숭숭 뚫린 탑은 어느 날인가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하석상대(下石上臺), 즉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기’의 시작과 결말입니다.
최근 모 주방가구 회사 내에서 성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보여준 회사의 대응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습니다. 피해 직원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회사 이미지를 지키는 데만 급급했거든요. 피해 여성 구제는커녕 회사 내부에 또 외부로까지 알려질까 입단속에만 여념이 없었지요. 그러다 사실이 드러나자 여성 고객이 대부분인 그 회사는 이미지 추락과 함께 ‘다신 못 쓸 거 같다’며 불매와 냉대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여성들에게 제품을 팔면서 정작 자기네 피해 여직원은 외면한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차갑게 돌아선 것입니다.
만약 그 회사가 지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다면 직원을 아끼는 회사로 이미지가 상승하고 고객들한테도 더 큰 신뢰를 얻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요. 기초가 아닌 상부, 조직을 위한 조직이었을 테니까요.
뜯어진 부분을 미봉(彌縫)으로 대충 기우면 옷은 조만간 쭉 찢어져 버립니다. 사고에는 대책 없고 사과에만 대책 있는 임시변통은 같은 사고만 부릅니다. 적극적인 피해자 구제와 마땅한 가해자 징벌,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까지 힘겨워도 새 돌 지고 와 꾸준히 고이고 쌓아야 탑이 유지됩니다. 전화위복이란 언제나 수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제 돌 괘서 버티면 거탑도 무너집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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