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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구분에 익숙하다. 하지만 뇌에서는 구조가 곧 기능이다. 신경세포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구조물(수상돌기와 축색돌기)을 뻗어서 다른 신경세포와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 구조물의 모양에 따라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이 다르다. 신경세포 내부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가 세포막을 따라 이동하는 전기 신호인데, 신경세포의 모양에 따라 전기 신호가 전파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경세포의 종류에 따라 신경세포의 모양이 다르며, 신경세포의 모양이 변하면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도 달라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구조와 기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뇌를 이해하려면 신경세포의 형태와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핏 생각해보면 신경세포의 생김새처럼 기본적인 내용이야 이미 다 밝혀져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15년 출간된 한 연구에서는 생쥐의 뇌를 29나노미터 두께(머리카락 굵기의 약 3000분의 1)로 얇게 자르고, 각 조각에서 신경세포들을 하나하나 표시한 뒤, 이 조각들을 다시 3차원 이미지로 합성해서 신경세포들의 구조와 연결을 살펴보았다. ‘Crammed with connections’라는 제목의 3분짜리 유튜브 영상에서 이 결과를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결과를 처음 보았을 때 거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동안 논문도 제법 읽고 뇌과학 수업도 여럿 들었건만, 신경세포들이 이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교과서에서 본 건 대개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뻗어져 나온 축색돌기가, 다른 신경세포의 수상돌기와 연접하여 하나의 시냅스를 형성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너무나 많은 신경세포들이 빈틈 없이 얽혀 있었고, 하나의 시냅스 근처에도 너무 많은 신경세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결과에 놀란 것은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신경세포를 각기 다른 색깔로 표시했는데 너무 많은 신경세포가 얽혀 있다 보니 연구자들은 마땅한 색깔을 찾는 데도 애를 먹었다. 사람의 눈이 서로 다른 색깔로 인식할 수 있는 색깔의 가짓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살고도 나도 다 알지 못하는 내 속에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에는 과연 그럴 만한 복잡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 뇌를 모방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은 뇌를 모방해서 만든 인공신경망(소프트웨어)에서도 드러난다. 알파고에도 사용된 심화학습(딥 러닝)은 뇌 속 신경망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다. 심화학습이 시각 인식에 특별히 탁월한 것은 심화 학습이 시각뇌의 구조적인 특징을 많이 참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칩(하드웨어)도 신경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2014년 IBM에서 나온 트루노스(TrueNorth)라는 신경모방칩이 그 예다. 실제의 신경세포는 다수의 신경세포들의 입력을 받고, 이 입력 총합이 문턱값을 넘어설 때만 출력을 낸다. 이 신경모방칩도 실제의 신경세포와 유사하게 동작하는 실리콘 신경세포들로 구성되었다. 뇌의 신피질에서는 비슷한 정보를 나타내는 신경세포들이 작은 원기둥 구조 안에 모여 있고, 이런 원통들이 병렬로 늘어서 있다. 이와 유사하게, 256개의 실리콘 신경세포들을 긴밀하게 연결해서 뇌 속의 원기둥과 비슷한 코어를 만들고, 이런 코어 4096개를 모아 신경모방칩을 만들었다. 신경모방칩에서는 정보처리에 참여하는 실리콘 신경세포가 출력을 내보낼 때만 전력을 소모한다. 따라서 기존의 컴퓨터 칩에 비해 전력을 훨씬 적게(약 1000분의 1) 소모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컴퓨터보다 심화학습에 부합하는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신경모방칩을 사용하면 길찾기, 공간 탐색 등 기존의 컴퓨터로는 어렵던 일도 더 쉽게 해낸다고 한다.

뇌가 몸 안에 있듯이, 정보처리장치에 몸을 부여하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로봇에 몸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하고, 몸체를 움직여서 생긴 효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하면(예: 동공을 왼쪽으로 움직이면 왼쪽이 보인다) 로봇은 시뮬레이션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스스로 파악해 간다. 이렇게 하면 사고 현장에 보낸 로봇이 고장 나더라도, 로봇이 스스로 고장된 부위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움직임을 찾아낼 수 있다. 유용한 기술이기는 하지만, 이 연구는 로봇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라는 개념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스스로 그러한 자연

이런 기술들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 참 별거 없다는 생각에 허탈해진다. 인간과 비슷한 구조로 만들면 인공지능도 인간과 비슷하게 동작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인간만의 영역’이 침해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했지만, 어쩌면 ‘인간만의 영역’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으스댔지만, 사실 인간도 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들어진 자연의 일부였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생태계를 대해왔다. 인간의 기준에서 감정을 정의하고, 동물들에게는 감정이 없으니 함부로 대해도 좋다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생태계를 지탱하던 수많은 생물이 멸종했지만 당장은 별 문제가 없기도 했다. 기술의 힘을 가진 인간에게 동물들이 대적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힘을 가진 인공지능이, 사람이 생태계에 했던 방식으로 인간을 대하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담긴 자료로 학습하고 그에 따라 동작한다. 이상기후가 나날이 잦아지는 요즘, 인공지능 덕분에(혹은 때문에)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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