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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건 꼭 나타나 끼어들거나 여기저기서 은근한 쓸모를 보이는 사람, 사물에 ‘약방에 감초’라는 속담을 씁니다. 예전에 한 개그우먼이 후배 개그우먼들에게 “약방의 감초가 되지 말고 약방이 되라!”며 남자 개그맨들의 ‘깍두기’를 넘어서라고 조언했다 합니다.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약방이 그 약방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흔히 이 속담의 약방을 약방(藥房), 즉 한약방으로 알고 한약방은 감초를 늘 갖추고 있으므로 ‘한약방마다 감초’로 알고 있습니다. 감초 없는 한약방 없으니 맞는 말 같지만 아닙니다. 이 약방은 한자 한 글자 살짝 다른 약방(藥方), 즉 처방전이라는 뜻이니까요. 한약 조제할 때마다 처방전에 감초가 꼭 끼어 적힌다는 말입니다.

감초는 약재의 독성을 중화시키고 약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며 단맛으로 쓴맛까지 줄여줍니다. 감초에는 글리시리진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설탕보다 최대 50배 달다고 합니다. 원래는 쓰디써야 할 담배에서 단내가 맡아지는 것은 그 안에 감초 성분을 넣었기 때문이지요. 그 밖에 여러 감미료에도 이 성분이 들어가니 감초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감초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감초도 많이 복용하면 혈압 높이고 간을 상하게 하니 딱 감초만큼만 써야 감초 역할이라 하겠죠.

때론 꼽사리 감초가 주제넘게 남의 가정사, 연애사에 이래라 저래라 처방전까지 써주기도 합니다. 갈라서라, 헤어져라, 제 일인 양 약 오르고 독 올라 뒷갈망 못할 조언들을 쏟아냅니다. 어시나 좀 해 달랬더니 공 잡고 안 놓습니다. 외려 “나만 믿고 팔로 미!” 손짓합니다. 도와 달랬지 꿰차라 했나요? 오죽 답 없으면 날 찾았을까, 지레 똑똑한 짐작일랑 하지 맙시다. 우정출연은 톡톡한 감초까지가 좋습니다. 지나친 감초는 극약 처방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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