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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에는 뭘 하세요?” “재활요.”

‘국가대표 발레리나’ 김지영의 답변은 솔직했다. 객석에 웃음이 번졌다. 2017년 12월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국립현대무용단이 기획한 ‘댄서하우스’ 시리즈에 출연한 김지영이 ‘40대, 나이 든 무용가’를 주제로 발레리노 김용걸과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1998년 세계적 권위의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 파드되(2인무) 부문 1위를 차지했던 ‘전설의 단짝’이다. 발레리나로서 환갑에 가까운 ‘1978년생 김지영’은 “예전에는 쉬는 날 영화도 보고 했는데, 요새는 재활만 열심히 한다”며 웃었다.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선 “일 년 중 안 아픈 날이 한 30일밖에 안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지영의 춤을 처음 만난 건 2001년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에서였다.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997년 최연소(19세)로 입단한 뒤 종횡무진 활약할 무렵이다.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프리기아 역을 맡은 김지영은 타고난 신체조건과 뛰어난 테크닉, 섬세한 연기력과 우아한 기품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곧바로 ‘덕질’(좋아하는 대상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고 모으는 일)에 돌입했다. 2006년 암스테르담 여행 중에도 당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소속이던 김지영을 보러 갔다.

김지영(41)이 23일 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 마지막 무대에 섰다. 낭만발레의 대표작 ‘지젤’의 주역이었다. 22년 만에 국립발레단을 떠나는 그는 올가을부터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로 강단에 선다. 현역 은퇴는 아니고 틈나는 대로 무대에도 오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형 공연장에서 펼치는 전막 발레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발레리나는 뼈를 깎지 않고 뼈를 재조립한다. 거기에 붙은 살과 근육도 재구성한다. 몸으로 혼(魂)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발레리나는 무용에 인신공양을 하는 수도승이다.” 

시인 김중식이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하던 2003년에 쓴 기사다. 발레리나라는 업(業)을 이보다 적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기란 어려우리라. 스무 해 넘도록 뼈를 재조립하고 살과 근육을 재구성해가며 춤춰온 김지영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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