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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개가 달밤에 늑대처럼 우는 걸 많이 봤습니다. 애먼 달을 보고 우는 개가 늑대의 후손이라 그런 걸 모르던 때라 그저 저 개가 미쳤나 싶어 시끄럽다고 툴툴거렸지요. 늑대들은 목청 길게 우는 걸 하울링(Howling)이라고 합니다. 긴 울음소리로 자신과 무리, 사냥감의 위치 따위를 알리는 신호법이죠. 개들 중에는 간혹 그 본능이 남아 확성기 켜고 돌아다니는 차장수나 트로트, 클래식같이 일정하거나 단조로운 소리에 반응해 우는 녀석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시면 차장수 확성기 소리에 한 마리가 울고 동네 개가 다 따라 울던 걸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옛날 서당 개도 마당에서 학동들이 일정한 운율로 책 읽는 소리를 줄기차게 듣습니다. 그렇게 내리 삼 년을 듣던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조상의 본능과 들리는 운율에 따라 풍월 읊듯 워어어얼~ 한다면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일이’ 개가 유식해졌다 하겠지요. 서당 개 월~이 따라 읽고 흉내 내는 것처럼 비춰졌을 겁니다. 여기서 풍월은 바람을 읊으며 달을 희롱한다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준말이자, 짧은 시조를 길게 늘여 부르는 시조창을 말하기도 합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훌륭한 사람이나 좋은 환경에 오래 있다 보면 저절로 얻어 배우거나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속담으로 ‘큰 나무 덕은 못 봐도 큰 사람 덕은 본다’가 있습니다. 사람과 달리 나무는 다른 나무를 알아주지도 키워주지도 못하니 자기보다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있는 나무는 결코 빛을 보지 못하지요.

큰 사람은 항상 지금보다 큰 사람을 지향합니다. 그러니 이 자리로 어서 올라오라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하지만 큰 나무는 애써 올라온 자리를 빼앗길까 다른 나무들을 제 그늘 밑에만 두려 하고요. 혼자 큰 나무만 있고 같이 큰 사람은 귀한 요즘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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