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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소방관의 죽음

opinionX 2017. 9. 19. 14:47

1998년 미국 보스턴에서 소방관 6명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소방관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추모 연설은 수많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클린턴은 “소방관들은 ‘누가 우리를 구해 줄 것인가’라는 물음에 ‘여기 내가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응답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2001년 9·11 테러 때 뉴욕 소방대원들의 활약상은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당시 소방관 347명이 순직했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의 물결을 거슬러 세계무역센터 빌딩으로 뛰어들었다. 소방관들은 “왜 가느냐”는 물음에 “내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7일 소방관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원 강릉시 석란정 화재 현장을 동료 대원이 바라보고 있다. 이날 오전 4시29분쯤 석란정에서 화재 진압을 하던 경포119안전센터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가 무너진 정자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선 수년 전부터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이 전해지면 ‘소방관의 기도’라는 글이 회자되곤 한다. 미국 캔자스의 한 소방관이 화재사고 때 3명의 어린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중략) 신의 뜻에 따라 목숨을 잃게 되면/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봐 주소서….” 이 글은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사고 때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 위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지난 17일 강릉시 석란정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던 경포119안전센터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가 순직했다. 이 소방위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있었고, 이 소방사는 임용된 지 8개월밖에 안돼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 소방위는 화재진압 경험이 많은 베테랑으로 새내기 소방관인 이 소방사와 한 조를 이뤄 근무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재난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51명이나 된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들이고, 연인이자 남편이었던 소방관들이 연평균 5명꼴로 싸늘한 주검이 돼 가족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석란정 화재 현장에서 참변을 당한 이 소방위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계신 91살 노모를 매일 보고 싶다”던 꿈을 이룰 수 없게 됐다. 고시원 쪽방에서 2년간 독하게 시험에 매달린 끝에 소방관이 된 이 소방사는 결혼을 약속한 예비신부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떴다. 이들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희생됐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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