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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안전성이다. 집값이 오르거나 살기에 편한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하다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큰 변수 중 하나이다. 수년 전 북한의 장사정포 문제로 한참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전에는 서울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다. 원전과 가장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 이후로는 서울이 가장 안전한 곳은 아니게 됐다. 원전에서 가장 멀고, 장사정포대에서 가장 멀고, 그렇게 거리를 재면 충남의 몇 개 도시가 걸린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안전 요소는 여전히 원전과 북한 문제이다. 서울은 한반도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데 한국의 원전은 공교롭게도 서울과 가장 먼 거리에 놓여 있다. 청와대에서 가장 먼 곳이라고 해도 같은 얘기이고 마찬가지 이유로 국회에서도 가장 멀다.

환경에도 전략이 있다. 제1전략은 분산이고, 제2전략은 집중이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는다. 그런 게 분산 전략이다. 그냥 있으면 너무 농도가 높아지니까 분산시켜서 확산시킨다. 물론 원천적으로 발생시키지 않으면 제일 좋은데 그게 어려울 때 하는 일이 분산이다.

때때로 분산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이때에는 집중을 선택한다. 폐기물 매립장을 두는 것은 집중 전략이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막 버려지면 도저히 관리할 수 없으니까 한곳으로 집중시킨다. 물론 생활 쓰레기 같은 것은 그렇게 집중시킨 다음 나중에 토양 복원을 하고, 발생한 메탄가스를 재활용하기도 한다. 산업 쓰레기를 그렇게 집중시키면 그곳은 ‘환경 포기지역’이 된다. 이 경우는 집중시키면 안된다. 물론 그렇게 하다 보니 몰래 바다에 버리는 해양 투기 같은 게 발생한다.

영화 '판도라' 포스터

박정우 감독의 영화 <판도라>가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환경의 제2전략, 집중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전 사고에 대한 영화 기획이 처음은 아니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때에도 원전 폭발을 다룰 기획이 있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너무 복잡해서 시나리오 형성 과정에서 빠졌다.

쓰나미 버전이든, 지진 버전이든, 원전은 늘상 위험을 안고 운영된다. 한국 원전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집중성이 영화 <판도라>의 출발점이고 그 특이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허술하게 관리되는 것이 사연을 격발시키는 장치이다.

이 과정이 역사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이제 원전을 유치 혹은 허용하는 새로운 지역이 없으니까, 있는 곳에 더 집어넣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기대한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집중지역이 생겨났다는 게 맞다. 그렇지만 집중과 함께 더 세밀한 관리와 주민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전략적 집중지가 아니라 ‘환경 포기지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영화가 파고들어가는 것은 이 지점이다. 모인 건 모였다 치자. 그래서 국가가 뭘 더 했는데? 여기에 원전에 임시 보관하고 있는 고준위 폐기물은 클라이맥스로 가는 격발 장치가 된다. 위험이 끝나니 진짜 무서운 게 온다. 이런 2중적 위험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원전 밀집지역과 영화 <판도라>는 예방주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볼수록 실제 위험성은 줄어든다. 아무래도 정부든 한국수력원자력이든 뭐라도 더 할 것이다. 하다 못해 부품 빼돌리기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독감 백신 맞았다고 독감에 아예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오래된 것은 정지시키고 새로운 것은 덜 투입하고 집중이 아닌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영화 <판도라>에서 끝나야지, <판도라 그 이후> 속편이 나오면 안된다. 우리가 지금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석훈 |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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