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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탄핵 농성 중이고, 세종시의 고위 공무원들은 숨 쉬기를 멈추었다. 그토록 애용하던 ‘안보’와 ‘민생’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이제 그만 농성을 중단해야 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리고 직업 공무원제의 목적도 국민을 위한 법치행정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이다. 공무원은 대통령이라는 한 개인의 신하가 아니다. 공무원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국민의 대표자들이 법률에 근거와 절차를 정해 두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종시 고위 공직자들은 법치행정의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 듯하다.

대법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한 지도 11일째이다. 이 판결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압박에 대한 대응에도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에 공장을 지을 경우 국경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할 태세이다. 그러나 그의 언행은 FTA의 기본 원칙에도 어긋난다. 미국과 멕시코의 FTA에는 그러한 새로운 조세나 관세 부과가 금지 대상이다.

대법관들의 FTA 협상 문서 공개 판결은 단순 명료하다. 한·미 FTA에는 여러 독소조항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상한 조문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한국 기업에 미국법 이상의 FTA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서문에 있다. 이 조항의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는 것이 대법원 판결이다.

이 문구는 미국 무역법 조문을 그대로 한·미 FTA에 심어 놓은 것이다. 이 조항은 이런 논리이다. 미국법은 이미 충분히 미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을 보호한다. 이미 FTA를 통해 제공하려는 보호 수준보다 더 높다. 그러니 FTA를 한다고 해서 미국법 이상의 보호를 외국 기업에 제공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미국 예외주의요, 미국 일방주의이다. 이미 미국법의 보호 수준이 FTA보다 더 높다면 그냥 미국법의 적용을 그대로 받으면 되지 FTA를 왜 하는가?

피고 산업부 장관은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명확하다. 왜 이렇게 이상한 문장이 FTA에 들어갔는지, 그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공개를 한사코 거부했던 산업부 장관은 1심에서부터 패소했다. 그런데도 공개하지 않고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도 패했다. 그런데도 공개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패소했다. 그런데도 피고 산업부 장관은 공개하지 않는다.

산업부 장관은 역사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는 외교 안보 분야에서 법치주의를 실현한 최초의 장관이 되어야 한다. 일찍이 1967년의 한·일 청구권 협상, 1978년의 한국군 작전권 이양 비밀 조약(이 조약은 조약 조항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2007년의 한·미 FTA 협상,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검역 협상, 최근의 위안부 협상, 사드 협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외교 안보는 법치주의를 위반하여 매우 취약했다. 그 참담한 결과로 아베 일본 총리로부터 일본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망언을 듣게 되었다. 일본 정치인으로부터 한국은 사기국가라는 오명을 듣게 되었다.

외교 안보도 법치주의 행정을 따라야 한다. 절차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와 협의하고 토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분열되지 않고 조롱당하지 않는다.

위안부 협상을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말했듯이,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및 그 합의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그렇다. 트럼프 시대에 국민은 알아야 한다. 한·미 FTA에 왜 이상한 조항이 들어왔는지 알아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FTA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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