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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금요일, 비로소 제도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최대선인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통과에 대한 우려가 저번 주 내내 이어졌지만 지난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에 모인 전국 약 260만명의 물결이 ‘탄핵안 통과’ 이외 어떤 선택도 정치권에 남겨주지 않았다. 범죄자에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은 4차 담화를 통해 ‘국회 합의’와 ‘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명예롭고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마지막 배수진을 쳤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부릅뜬 눈을 비켜 갈 수 없었다. 만약 9일 국회에서 국민들의 민의를 어기고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새누리당 해체와 국회 해산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광장의 목소리다. 박근혜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얼굴과 조합을 통해 재집권 플랜을 짜고자 하는 수구보수재벌 동맹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상황이 더 두렵기에 역사의 반동은 가능치 않으리라는 판단들을 나는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시간 끌기를 하거나, 국민과 국회의 뜻을 어기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오히려 탄핵 가결 이후다. 순리대로라면 박근혜 퇴진은 기정사실화되었지만, 그 이후 상상되는 정치의 모습은 과히 희망적이지 않다. 먼저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 체제를 어떻게 두고 볼 수 있는지이다. 박근혜 정권의 대표 공범부역자이자, 검찰·법원 사유화의 몸통인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한다니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가피하게 ‘내각총사퇴 후 과도 내각’ 구성은 당연한 수순이다. 또 다른 몸통인 새누리당이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새로운 조각의 한 축이 된다는 것도 참 기가 막힌 일이다.

퇴진 운동 내내 민의의 뒤에서 계속 헛발질만 해왔던 야당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으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발의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2의 이명박근혜, 제2의 노무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의 윤리다. 최소한 1% 재벌독점특혜 금수저 사회를 위해 1100만의 국민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 평생을 일해도 은행빚 없이는 자기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부동산투기공화국의 폐지. 철도 의료 교육 등 공공부문 사유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사회. 국가보안법 폐지와 남북평화협정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현. 핵 없는 사회. 입시지옥 서열경쟁이 없는 사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조금은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이다. 그 대표자가 누가 되든 상관없지만 이런 새로운 시대의 요구가 사장된 채 얼굴 바꾸기 놀음만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있겠는가.

하여 9일은 박근혜 이후 한국사회를 향해 소중한 한 발을 다시 내딛는 날이 될지언정 이 국면의 끝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이제 비로소 주권자들의 직접 민주주의, 광장의 정치가 시작되는 날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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