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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져 집에서 TV만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이 국가를 자기 집 곳간 정도로 여기며 나랏돈을 빼먹고, 아무런 위임도 없는 사인들이 국가 기밀과 국정 운영 핵심과 인사에 관여하고, 지시까지 내렸다는 이 황당한 상황. 국민의 80%가 하야하라는 의견을 밝히며, 이미 위임된 권력을 회수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얼굴 바꾸기 놀음만 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현행범 박근혜. 스스로 범죄 행위를 시인하며 검찰 조사와 특검까지 받겠다면서도 대통령직은 유지하겠다는 그 뻔뻔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거대한 불의와 국가 전체가 침몰한 상태에서도 ‘혼란’을 이유로 정략적 이해관계만 저울질하는 야권의 행태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를 바로잡아온 이들은 노동자 민중,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었음을 상기했다. 새로운 법과 정치와 주체와 체제는 늘 거리와 광장에서 태어났다는 교훈을 떠올렸다. 주권자들의 ‘항쟁’에 의해, ‘혁명’에 의해 달성되었음을 되돌아 보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준비해온 일본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 아침, 여행 가방을 풀고 노숙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아내에게는 고3 수험생 아이가 있다는 따위의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재판 중인 것만 해도 몇 갠데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진정으로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길은 그 분이 노구를 이끌고 섰던 그 민주주의의 거리, 최전선에 다시 서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 1200만 비정규직을 포함한 2000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벼랑으로 내몰기 위해 노동법 전면 개악과 공공부문 사영화에 나서는 이 정권에 대한 분노, 사드 배치로 한반도를 다시 전쟁기지화하고, 역사를 자신의 가족사라도 되는 양 국정교과서로 통일시키겠다는 위험한 군주를 이번엔 끌어내려야 한다는 분노도 있었다.

동료 문화예술인들, 시민들, 노동자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캠핑촌’을 꾸렸다.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 예술인 1만명을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탄압해 왔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조윤선이 청와대 정무수석 때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박근혜는 더 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일 수 없다. 분노한 문화예술계 전체가 나서고 있다. 어제는 캠핑촌에서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건국 이래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선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12일에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다.

박근혜 퇴진은 이제 기본 상식이다. 나아가 이참에 한국 사회 운영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 얼굴과 당만 바뀌는 정계개편, 거국중립내각은 안된다.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핵 없는 나라,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 국가보안법 철폐를 통한 표현과 사상의 자유, 1% 기득권만의 무한한 행복과 자유와 독점이 규제되는 사회. 세월호법 재개정,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특검. 2000만 노동자 대표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즉각 석방 등. 새로운 가치관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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