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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맹위를 떨친 지도 100일이 지났건만 이 재앙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도 어떤 방역체제가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이 없다. 낙관과 희망에 기대어 비정상적인 일상생활을 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방역체계에 대해 외국의 평가가 아주 좋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설사 백신과 치료체계의 개발로 코로나19가 몰고 오는 재앙을 머지않아 막을 수 있다 치더라도 앞으로 지구촌의 우리 삶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한 물음이 뒤따른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매우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마스크 대란은 물론 위독한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집중치료장비마저 부족해서 환자의 생사여탈에 관한 결정을 의사 스스로가 내려야만 하는 기막힌 상황까지 전개된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코로나19가 몰고 온 파장을 지금 전체적으로 가늠하기는 이르지만 여러 가능성을 전제한 대안 제시나 해결책의 모색은 그러나 절박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코로나19 확산방지 대책으로 시도되었던 집단면역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한국처럼 빠른 검사와 격리를 통해 감염속도를 줄이면서 치료법의 개발에 따라 점진적으로 통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행되는 물리적 거리 두기, 통금, ‘코로나 앱’과 같은 심한 제약과 통제도 시민 대다수는 받아들이고 있다.
전격적으로 ‘비상조치법’을 통과시킨 헝가리의 오르반 정부를 예로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더불어 중국,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이번 사태를 맞아 초기 대처에 상대적으로 빨리 성공한 것은 동아시아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보는 태도다.
관건적 문제는 역시 코로나19 이후 지구촌의 경제와 사회구조가 과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이다. 일각에서는 전대미문의 이번 충격은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지구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달리던 속도가 일단 떨어진 후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당연히 속도를 이전보다 더 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감속의 정도가 아니라 - 요즘 자주 들리는 ‘셧다운’이나 ‘록다운’이라는 단어처럼 - 인간의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거의 정지상태에 들어갔다.
지금 내가 사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에서 부활절은 큰 의미가 있다. 아이들은 이때 대부와 대모가 직접 구운 달콤한 빵 ‘푸라르 도시’를 선물받는데 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지속되는 풍습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 오래된 전통마저 건너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부활절에는 모두 집에서 보내야 한다는 경고를 모든 매체가 총동원되어 연일 내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아주 심각한 스페인을 바로 이웃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더불어 역시 이번 사태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보증하는 ‘코로나 채권’의 발행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네덜란드는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계속 떠맡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장차 미국과 중국의 영향권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일정한 수준에서 서로 연대하겠지만 다양성의 통일이라는 원대한 기획은 지금 최대의 시련에 봉착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고문에서 헨리 키신저는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질서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예견하면서 자유세계의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민주세계는 폐쇄성을 극복하고 계몽주의 가치들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세기가 예상보다 빨리 오고 있음을 에둘러 경고하는 것 같다.
과거의 질서는 예상보다 빨리 무너지고 있지만 새 질서는 그러나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시기를 우리는 전환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정치적 특징을 파헤친 명저로 1944년에 출판된 칼 폴라니의 <대전환>이 있다. 시장자유주의가 사회적 토대로부터 이탈할 때 이에 대한 반동으로 파시즘과 볼셰비즘이 등장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밑에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지구화도 이제 코로나19 재앙을 만나면서 어쩔 수 없이 대전환의 길목에 들어섰다. 이 위기를 통과하면서 대량실업과 인플레이션은 불평등 구조를 더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득세하고 있는 우익 포퓰리즘은 앞으로 그 세를 더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다양한 흐름은 있다. 이 중에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런 흐름도 이제 스스로 자기의 이론과 실천을 검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잘 작동하던 컴퓨터가 어느 순간 갑자기 멎어 당황한 적이 있다. 무슨 결함이나 오류 때문인지도 모르니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리셋’을 시도하면 예상외로 문제가 쉽게 풀린다. 물론 컴퓨터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긴장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필요하다. 지금 상황이 이와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의 충격 속에서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리셋은 그래서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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